남녀 모두가 알몸이다. 상하체의 비율이 맞지 않는 데다 온전한 몸을 찾기 힘들다. 잘린 팔과 다리, 머릿속과 내장까지 훤히 보이는 사람 등. 잔혹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면서도 어딘지 결핍된 인간군상에서 묘한 연민이 느껴진다.
중견작가 정복수 씨(56)는 20번째 개인전 ‘존재의 비망록’에서 지금까지의 표현적 회화에서 한발 나아가 조각과 설치작품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파헤친다. 30년 넘게 인체를 주제로 작업해온 그에게 기형적 몸을 그리는 이유를 묻자 짧게 답한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한 것이다. 절단된 신체는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사는 우리 자신을 상징한 것이다.”
세계 곳곳의 폭탄테러나 노르웨이 총기난사 사건처럼 현대인의 폭력성을 접하면서 ‘인간 사회가 이래서야 되겠는가’라는 작가의 탄식은 해부도처럼 적나라한 그림에 반영돼 있다. 눈이 여럿 달리고, 사람 안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 있는 모습에 ‘나’를 멋지게 포장하려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우리네 얼굴이 비친다.
이번 전시에선 작은 포장용기에 인체를 그린 뒤 이를 하나로 재구성한 회화작품과 ‘낙원에서 온 편지’ ‘꽃이 떨어지는 시간’ 등 입체작품이 눈길을 끈다. 예전에 비해 오브제와 화사한 색채를 적극 활용한 작품에서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느낌이 극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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