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 남원에서 열린 국악경연대회에서 참가자 가족으로 위장한 채 경연 현장을 촬영 중인 전통예술경연대회 평가위원. 자신의 평가에 이견이 있을 경우 근거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남원=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지난해 평가 자료를 보니 62점을 받았네요. 60점이 기준 점수니까 아슬아슬합니다. 올해 얼마나 나아졌을지 모르겠어요.”
6일 전북 남원시에서 열린 한 국악기 경연대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전통예술경연대회평가위원회 위원인 A 씨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기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이 대회는 전국적으로 꽤 알려져 있지만 장소는 남원 시내에서도 승용차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외진 곳에 있었다. 지리산 자락의 폐교를 리모델링한 건물. 경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대회 참가자 가족과 친지를 제외하면 관람객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A 씨는 대회 운영을 꼼꼼히 살피며 수첩에 적고 사진을 찍었다. 그의 평가 결과에 따라 이 대회는 명인부 1위에게 주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당연히 대회의 권위는 크게 떨어진다.
경연대회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이들 ‘암행어사’와 이들의 냉정한 평가를 막아보려는 대회 주최 측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전국 곳곳 경연대회마다 벌어지고 있다. 대회 주최 측이 평가위원의 ‘정체’를 알아본 뒤 식사를 대접하려 하거나 ‘돈 봉투’를 건네는 경우도 있다고 A 씨는 말했다. 유독 점수를 짜게 주는 평가위원들의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도 있다.
문화부가 평가위원회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정부가 지원하는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문화부장관상이 너무 많아져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전통예술 분야 경연대회 중 정부 지원상을 받은 대회는 2003년 82개에서 2009년 109개로 6년 만에 30% 넘게 증가했다.
평가위원회는 2009년부터 전국 국악경연대회에 파견하는 평가위원을 3명씩으로 늘려 평가 제도를 강화했다. 어떤 대회든 100점 만점에서 60점 이하의 평가 점수를 2년 연속 받으면 정부 지원상이 취소된다. 이 기준이 처음 적용된 올해 6개 대회가 장관상을 박탈당했다.
평가위원인 권모 씨는 “애초 경연대회가 너무 많아진 것은 정부의 잘못도 크다”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전통문화와 지방 문화예술 활성화 정책을 내세우면서 지역 축제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생겼고 여기에 지방자치제 정착, 대학 국악과 증가가 맞물려 지역마다 경연대회를 앞다퉈 신설했다. 이에 맞춰 정부 지원상도 남발됐다.
그러는 동안 많은 국악경연대회가 참가자들의 입시용이나 취직을 위한 ‘스펙 쌓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6일 열린 대회 고등부에 출전해 참가자 16명 중 1위를 차지한 학생의 어머니 김모 씨는 “서울대와 한양대 국악과가 입시 수시전형 자격 요건으로 지정한 대회여서 참가했다”고 말했다.
장관상이 너무 많아져 상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대학 국악과도 전국대회 수상 경력을 점차 평가에 반영하지 않는 추세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연극, 무용, 영화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는 지정 대회 수상 경력을 입시 평가에 반영하지만 전통예술 분야만은 수상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변별력을 키우려는 ‘암행어사’ 효과도 아직은 미지수다. 지역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한 탓인지 평가위원회 예산이 올해 소폭이지만 삭감됐다. 올해 취소된 6개의 장관상도 같은 수에 대해 새로 신청을 받아 전체 상 수는 그대로 유지된 점도 당초 취지에 맞지 않는다. 문화부 관계자는 “올해는 여러 사정상 취지대로 되지 않았지만 내년부터는 줄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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