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원장은 동아일보 ‘책의 향기’ 독자들을 위해 ‘월든’과 ‘서양미술사’를 추천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환경과 생태, 탐욕적 자본주의의 문제점 등을 제기하는 뿌리가 된 책이 바로 ‘월든’”이라며 “200년을 넘나드는 통찰력에서 왜 고전이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서양미술사’는 갓 대학생이 된 그에게 미(美)에 대한 눈을 선사한 책이라고 했다. 역사에 방점을 찍고 읽기 시작했지만, 나중엔 미술 자체에 빠져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1845년 월든 호숫가 숲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2년간 자급자족한 저자가 자연과 함께 자신의 삶을 정리한 책. 대자연에 대한 예찬이자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며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독립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미술사/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막 미술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에게 서양미술의 윤곽을 보여주는 개론서. 선사시대부터 20세기 모더니즘까지 서양미술의 변천 양상을 화보와 함께 서술했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였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47)은 9월 라디오 방송 진행을 그만둔 후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내려가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하 자기혁명·리더스북)을 탈고했다. 그 뒤 고향에 머물러온 그가 9일 ‘자기혁명’ 독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박 원장에게 올해 여름은 특별함의 연속이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함께 3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청춘콘서트’를 진행했고, 이후 안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 고민으로 시작된 사회 변화의 물결을 현장에서 맞이했다. 그러고는 방송을 모두 그만뒀고, 주기적으로 써오던 신문이나 잡지의 칼럼들도 하나둘 줄였다. 여러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요즘 초등학생인 막내딸과 놀아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독서 삼매경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식당에는 스무 살 대학생부터 40대 주부까지 독자 20명이 모였다. 이들을 맞이한 박 원장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저녁 약속을 잘 하지 않고 혼자 집에서 요리해 먹는 편”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내 책인 ‘자기혁명’뿐 아니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 그런지 이 자리는 무척 편안하고 좋다”고 했다.
박 원장은 “‘자기혁명’은 20, 30대를 대상으로 한 자기계발서지만, ‘인문서’에 관심 있는 이에게 유용한 ‘입문서’가 되면 좋겠다”는 강조했다.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를 감동시키는 내적 혁명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미래를 열어가도록’ 권한다. 책에 담은 모든 이야기는 그가 평생 읽어온 책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저는 다른 재능이 별로 없어요. 머리가 커서 균형도 잘 못 잡고(웃음), 운동도 잘 못하죠.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책 읽기 정도예요. 아내는 ‘책과 격리수용해야 한다’ ‘병에 가깝다’고 말하죠.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일종의 의무감에 더 많이 읽었어요. 선생님께 공부 안 하고 책만 읽는다고 혼난 적도 많았죠.”
박 원장은 경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책을 섭렵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른바 ‘불온서적’도 자신의 인생에 단 1mm의 변화를 이끌었다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라고, 또 책의 내용을 진리로 맹신하지 말고 항상 의문을 던지며 읽으라고 강조했다.
“한 권의 책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기면 관련 책을 꼭 찾아 읽습니다.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프랑스 혁명사와 유럽 풍속사, 서양미술사에 대한 책을 읽게 되는 셈이죠. 그래야 ‘적과 흑’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그를 ‘돌아버리게’ 만든 책은 바로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진자’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 등이라고 했다. 논리학자인 쿠르트 괴델, 미술가인 M C 에셔, 작곡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소재로 한 ‘괴델, 에셔, 바흐’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고통을 선사한 책이다.
그런데 이 같은 방식으로 책을 읽다 보면 한 권을 독파하는 데도 수십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병원장, 저술가, 방송진행자, 경제전문가, 청년 멘토 등으로 바쁘게 살아온 그가 어떻게 시간을 내 책을 읽을까.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불필요한 일을 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거예요. 정말 일이 많으면 TV를 보지 않거나 친구와 잡담을 하지 않는 등 불필요한 것부터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그렇게 살면 책 읽을 시간은 충분해요. 2000년대 초 집에서 TV를 없앴어요. 아이들이 방송을 보고 싶다고 하면 ‘다운로드 하라’고 합니다. 그 대신 다운로드 비용은 용돈에서 지출하게 하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책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더군요.”
2012년의 계획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여행기를 쓰는 것이다. 제목도 ‘체 게바라의 눈으로 쿠바를 가다’로 정해두었다. “제가 체 게바라가 돼 아바나의 해변을 걷는 거죠. 그러려면 체 게바라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고요. 팩션(사실에 기초해 상상력을 입힌 것) 같은 여행기를 쓰고 싶어요.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의 눈으로 그리스를 가다’도 생각하고 있어요. 카잔차키스는 지금과 같이 경제가 파탄 난 조국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이날 모임에서는 박 원장이 어떻게 20kg 이상 감량했는지, 안동 집에서 막내딸과 무엇을 하며 노는지 등 시시콜콜한 삶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매순간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외과의사로서 진료를 안 한 지 오래됐어요. ‘지금 저’라는 존재의 사회적 쓰임새가 더 크다고 믿거든요. 의사 박경철은 없어도 표시가 안 나지만(웃음), 청년들과 함께하는 멘토 박경철은 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 박경철이 가장 큰 쓰임새가 된다면 그때 의사로 돌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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