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에게 산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규성 시인은 “사람들은 도시화될수록 일상의 번잡에 찌든 영혼을 맑히고 속엣말을 가다듬으러 바쁜 시간표를 쪼개 산책을 나선다. (산책은)일부러 고독과 몸의 수고를 빌려 자연에서 멀어진 발길을 자연에 바싹 붙이는 ‘본원적 귀향’, 즉 자아 회복을 위한 충전”이라고 말한다.
김사인 시인은 산책을 “잠깐식의 출가(出家)”라고 정의한다. 길을 천천히 걸으며 사물들에 하나하나 눈을 맞추면, 안다고 여겨온 풍경의 깊고 아득한 내면으로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계간 ‘시인세계’가 겨울호에 ‘시인들이 좋아하는 산책길’이란 기획특집을 실었다. 정진규 문충성 김사인 나태주 문정희 허형만 등 시인 16명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산책길과 그 위에서 얻은 여유, 단상들을 풀어냈다.
4년 전 서울을 떠나 경기 안성시로 이사 간 정진규 시인의 산책은 성묘에 가깝다. 매일 선대 어른들의 묘원인 기유원(己有園)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아침마다 300여 년을 거슬러 산책하고 있는 사람이다. 수백 년 장송의 솔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의 아침 공기로 산림욕 샤워를 누린다.”
제주에 사는 문충성 시인은 현지의 ‘올레 걷기’ 열풍을 소개하며 사라봉 공원과 별도봉 장수산책길을 추천한다. 특히 서쪽으로는 제주 시가지, 북쪽으로는 제주 바다와 제주항, 남쪽으로는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이 두루 보이는 사라봉 정상의 절경을 예찬한다. 정일근 시인은 “30대 전부를 경주 남산과 사랑했다”고 털어놓았다. “나에게 경주 남산은 산이 아니었다. 하나의 길이었다. 눈이 내리는 날은 눈을 맞고,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면 달빛에 젖어 걸었다. 그렇게 백 번쯤 걸었을 때 얼굴 없는 돌부처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고 그는 말한다.
대구에 사는 문인수 시인은 고모동을 산책하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린다. ‘고모,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시 ‘고모역의 낮달’에서)
한 잔의 테이크아웃 커피처럼 도심 산책을 즐기는 시인들도 있다. 문정희 시인은 집 근처 선릉과 봉은사, 코엑스 주변 광장을 산책하며, 허형만 시인은 여의도 한강 둔치를 거닐며 시상을 가다듬는다. 나태주 시인은 걷기의 미학을 이렇게 말한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사색가가 된다. 서투른 철학가가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길은 지상에 만들어진 기다란 공간의 연속이지만 그것은 또 마음속으로 이어지고 이어지는 정신의 통로이기도 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