彼一時此一時라는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이 성어는 시대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지금은 지금 실정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 길을 가는데 제자 充虞(충우)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기쁘지 않은 기색이 있는 듯이 하십니다. 지난날 제가 선생님께 듣기를,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어째서 가르침처럼 하지 않고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듯한 기색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맹자가 위와 같이 대답했다.
텍스트에 따라서는 ‘彼一時也, 此一時也’로 돼 있다. 彼는 ‘不怨天(불원천)하며 不尤人(불우인)이라’고 말했던 그날을 가리키고, 此는 不豫色(불예색·기뻐하지 않는 기색)의 지금을 가리킨다. 혹은 彼는 오백년마다 王者가 흥기했던 것을 가리키고, 此는 오늘날 왕자가 일어나려고 하는 기운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여기서는 앞의 설을 따르기로 한다. 이것은 성현이 하늘을 즐기는 정성을 오로지 할 때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남을 탓하지도 않지만, 세상을 근심하는 뜻을 오로지 할 때는 기뻐하지 않는 낯빛을 띠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彼一時此一時란 말을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해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본래의 뜻이 아니다. 본래는, 성현은 하늘을 즐기는 정성을 우선하느냐, 세상을 근심하는 뜻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태도를 달리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렇게 한정된 뜻을 지니므로 근대 이전의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의미로 彼一時此一時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彼一時此一時란 성어가 일반화된 것은 중국과 일본에서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소설에서 이 성어를 ‘시간이 달라지면 상황도 달라진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됐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 성어를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여 일정하지 않으며 榮枯盛衰(영고성쇠)도 한때일 따름이다’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중국에서의 용법이 현재의 우리 용법과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彼一時此一時를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해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용법이다.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사용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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