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배춧잎에 파, 마늘, 생강, 고추 등을 채 쳐 넣고 배와 밤, 대추 등 온갖 과일과 낙지, 마른 북어 등 갖가지 해산물을 넣어 보자기처럼 싸서 익혀 먹는 김치가 보쌈김치다.
화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인 보쌈김치는 맛도 일품이지만 속에 들어있는 해물과 과일을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 넓은 배춧잎을 쭉쭉 갈라서 밥에 얹어 싸먹으면 밥 한 그릇이 뚝딱 사라진다.
황해도 개성의 명물인 보쌈김치는 지금도 생각보다는 먹기가 쉽지 않다. 집에서 담그기에는 손이 많이 가고 음식점에서 사먹자니 보쌈김치를 내놓는 곳이 많지 않다.
1920∼30년대의 보쌈김치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웬만한 사람은 언감생심 먹을 꿈조차 꾸기 힘들었던 궁중요리였으며 부자와 상류층에서도 별식으로 담그는 김치였다.
1935년 11월 15자 동아일보도 보쌈김치인 개성 쌈김치가 맛있고 유명한 것은 그만큼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인데 개성에서도 김장 전체를 쌈김치로 담그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담가서 손님이 올 때 혹은 얌전하게 써야 할 때에나 내놓는 김치라고 소개했다. 집안의 특별한 행사 때에나 내놓는 특수한 김치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쌈김치는 개성의 특산물로 알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궁중음식으로 발달한 김치다. 구중궁궐에서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김치를 왕족이나 궁궐을 출입하던 고관대작의 집에서 배워 담그면서 민간에 전해진 별미였다.
그럼에도 보쌈김치가 궁중음식이 아닌 개성의 명물음식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까닭은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배추와 관련이 있다. 언제부터 보쌈김치를 담갔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역사가 길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배춧잎으로 각종 양념과 과일, 해산물을 보자기 싸듯 싸려면 배춧잎이 크고 넓어야 하는데 이런 배추 품종이 나온 시기를 1850년 전후로 보기 때문이다.
1910년 이전 조선에서는 경성배추와 개성배추가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경성배추는 지금의 동대문 밖 왕십리 일대의 훈련원 자리에서 재배한 배추다. 반면 개성에서 재배하는 배추 품종은 가을배추로 인기가 높았다.
경성배추와 개성배추의 차이는 경성배추는 속이 비교적 알차고 잎이 짧은 반면 개성배추는 잎이 크고 넓지만 속은 꽉 차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동아일보(1923.11.9)에는 개성배추의 특징으로 키가 크고 탐스럽기는 하나 속이 덜 차고 고갱이가 여문 것이 적다고 했다.
따라서 보쌈을 싸기에는 개성배추가 훨씬 더 적합하기 때문에 궁중에서도 보쌈김치를 담글 때면 일부러 개성에서 배추를 가져다 보쌈김치를 담갔다. 이 때문에 보쌈김치가 개성김치로 알려진 것이다.
보쌈김치가 개성김치로 명성을 얻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개성에 부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보쌈김치에는 고명으로 각종 해산물과 과일이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담그는 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담글 엄두조차 내지를 못했다. 그렇지만 송도 상인으로 부를 쌓은 개성 사람들은 보쌈김치를 담글 수 있을 만큼 살림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개성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보쌈김치에 싸여 있는 작은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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