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의 초청으로, 한국인이 만든 이탈리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올라갔다. 현지 비평가들은 이렇게 평했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을 동양의 오페라단이 잘 지켜가고 있다.” 파격적인 시도, 현대적인 연출이 유행이 된 오페라 무대에서 당대의 의상과 무대,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반영한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이렇게 오페라 본고장에서 인정받은 서울시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가 24일부터 나흘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펼쳐진다. 이탈리아에 통째로 들고 갔던 그때 그 프로덕션이다. 호평 받은 부분은 한껏 살리고 지적 받은 점은 보완해 새로 매만졌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1800년대를 배경으로 프랑스 파리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와 그를 흠모해온 청년 알프레도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새로운 해석이 넘쳐나는 오페라 무대에서 라 트라비아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경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로 옮겨 나치의 붉은 완장을 찬 장교가 파티에서 ‘축배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모터사이클과 스포츠카가 등장하거나 알프레도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작품도 있었다.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 예술총감독은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4일 만난 그는 “왜 오페라가 점점 관객을 잃어가는지부터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정통성을 지키는 일이 도리어 신선하게 보이게 됐습니다. 국내 오페라 문화의 뿌리가 그리 깊지 않습니다. 원작을 비틀고 혁신해봐야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지요.”
그 결과 200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한 총 5회 공연에서 한 회 평균 2053명의 유료 관객이 들었다. 기업 협찬을 통한 ‘초대권 관객’으로 채워지는 국내 오페라 현실에서 이례적이다.
성악가들의 노력도 한몫을 했다. 이탈리아어를 흉내 내는 앵무새에 그치지 않도록 애썼다. 알프레도 역을 맡은 테너 나승서 씨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이해하고 노래하기 위해 문학적 표현을 익혔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방문 공연에서 평단과 관객들이 “눈을 감고 들으면 동양인인지 전혀 모르겠다”면서 한국 성악가들의 전달력을 칭찬했다고 박 감독은 전했다.
비올레타 역의 소프라노 박재연 씨가 덧붙여 설명했다. “알프레도 집안의 반대로 강제로 이별하게 된 비올레타가 ‘내가 저 풀밭 사이에 영원히 있을게’라고 노래하는 부분이 있어요. 작가가 의도한 ‘죽더라도 너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을게’라는 숨은 뜻을 알아야 절절한 심정이 배어나오죠.”
이번 공연에서 새로 연출을 맡은 방정욱 씨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인물 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설정하고 등장인물이 겪는 감정의 진폭을 크게 해 드라마적 요소를 부각했다. 비올레타의 하인 주세페가 지나치게 굽실거리는 것 등 이탈리아에서 어색하게 여기는 부분도 손을 봤다. 서울시오페라단은 베르디 극장 측에서 내년 두 편의 작품을 재초청하겠다는 뜻을 전해와 작품 선정 등을 놓고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비올레타 역에 소프라노 오은경 김은경 박재연 씨가 출연하며 알프레도 역은 테너 나승서 최성수 씨가 맡았다. 박재연 나승서 최성수 씨는 이탈리아 공연 때 같은 배역으로 출연했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 역으로 김성길 유승공 공병우 씨가 나온다. 마르첼로 모타델리 지휘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서울시합창단이 호흡을 맞춘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i: 24, 25일 오후 7시 반, 26일 오후 3시·7시 반, 27일 오후 5시. 2만∼12만 원. 02-399-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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