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두산인프라코어 합창단 ‘위닝 팀’의 즐거운 금요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부장도 신참사원도 “화음 안에 우린 하나”

11일 오후 합창단원들의 목소리가 예배당 가득 울려퍼졌다. 혼자 튀고 싶은 욕심을 버릴 때 자유분방한 목소리들이 맞아떨어져 간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1일 오후 합창단원들의 목소리가 예배당 가득 울려퍼졌다. 혼자 튀고 싶은 욕심을 버릴 때 자유분방한 목소리들이 맞아떨어져 간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것은 마치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금요일 퇴근하는 그런 속도.’

TV에서 보았던 광고 카피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 오늘은 직장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금요일 밤이다. 하지만 오늘밤도 회사 사람들과 함께하러 간다. 어차피 친한 친구들도 모두 결혼해 버려 딱히 찾아주는 사람도 없다.

공대 합창단=회사 합창단

눈만 잠깐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이다. 인천역에서 6시 전에 출발했는데, 휴대전화 화면 속에는 벌써 숫자 7과 15가 떠 있다. 연습 시작까지 15분 남았다. 이전 연습장이 울림이 적어 오늘은 최 상무님이 다니는 교회 3층 예배당을 빌렸다고 했다. 퇴근 전 확인한 공지에는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올라오라는 설명이 약도와 함께 있었다. 창원에서 반차를 내고 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늦으면 안 되지. 마음이 급해졌다.

“뮤렉!”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 홍보팀 최누리 과장님이 별명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준다. ‘음악을 좋아하는 슈렉’이라는 뜻이다. 다들 ‘딱이다’며 좋아했었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고 했지만, 왠지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최 과장님이 건네 준 ‘박무영, 주임연구원’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왼쪽 가슴에 달고 의자에 가 앉았다.

연습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예배당 의자에 빈 자리가 유난히 많다. 다른 날보다 참여율이 저조하다. 합창단 47명 중에서 절반만 온 것 같다. 맨 앞자리에 앉은, 소프라노를 담당하는 여성 동료 직원들도 5명뿐이다.

역시 안 되는 놈은 안 되나 보다. 정말 노래가 하고 싶어 들어오기는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소프라노, 알토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혼성합창단의 소프라노, 알토는 여성들이 담당한다). 대학 신입생 때도 ‘소프라노, 알토도 있다’는 친구의 말에 혹해 합창단에 들었다. 하지만 그곳은 공대였다. 소프라노 4명, 알토가 2명에 불과했다. 반면 베이스와 테너는 각각 스무 명이 넘었다. ‘경쟁률’이 엄청났다. 기계 만드는 회사의 합창단인 여기도 마찬가지다. 대학시절 4년 내내 마음을 비우고 노래에만 집중했듯이, 노래나 열심히 불러야겠다.

음악 안에서는 상사도 친구?

“자음 발음은 명확하게 하세요. 속도감을 잊지 마시고요.”

몸이 아파 나오지 못한 지휘자 대신 합창단원인 김성근 부장님이 지휘를 맡았다. 다음 달 말이면 정년퇴직을 하는 김 부장님의 지휘에 맞춰 다함께 ‘사랑으로’를 불렀다. 두 달 전에 처음 모였을 때만 해도 소리가 제각각이었는데, 이제 제법 합창단 티가 난다. 아주 가끔 하모니도 이뤄진다. 그런 순간이면 볼이 떨린다. 감동이 볼로만 오나 보다. 홀로 노래를 부를 때는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원더풀! 원더풀!”

‘빨간 구두 아가씨와 아빠의 청춘 메들리’ 연습 중 ‘빠다향’이 가득 묻은 발음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발음 굴리지 마세요. 합창할 때는 된장 발음으로.”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딸이 결혼할 때 축가를 직접 불러주고 싶어. 정년퇴직을 해도 이 합창단에는 계속 참여하고 싶고….”

잠시 쉬는 시간, 김 부장님이 말했다. ‘뮤렉’인 나보다 더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다. 35년 동안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를 했고, 인천남성합창단에서는 1982년부터 활동해 오고 있다고 한다.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는 나와 달리 왠만한 관악기는 다 다룰 줄 안다.

“이런 데서나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이랑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지. 음악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잖아.”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합창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대학교 때 전공한 성악에 대한 못 다한 꿈을 이루고 싶어 등 합창단에 들어온 동기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결국은 다들 음악이 좋아서일 뿐이다.

“맞아요. 음악으로 모이면 초등학생이랑도 대화가 된다니까요. 음악 안에서는 다 친구죠.”

아시아 세일즈팀의 김동언 과장님이 김 부장님의 말을 받았다.

“그럼 이참에 저랑도 친구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농담을 건넸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서른 살? 그럴까?”

김 과장님이 호탕하게 웃는다. 트럼본을 불 줄 아는 그는 아내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영업비밀 전수의 장

“금요일 아침은 달라요. 합창단 연습하러 온다는 생각에 눈 뜨면 막 신나고 그래요.”

‘공대 나온 여자’ 김정민 주임연구원이 최 과장님을 붙잡고 말한다. 합창단 내 유일하게 현장직군인, 40대 중반의 김용석 반장님도 한마디 더 보탰다.

“저번에는 본사에서 회계 담당하는 친구가 나눔 행사 한다고 현장까지 왔더라고요. 같은 회사에 10년 넘게 다녀도 절대 알 수 없는 친구들을 이 합창단에서 알게 되니까 그것도 여러모로 좋아요.”

9시 50분이 넘어서야 연습이 끝났다. 손에 가방을 들고 하나둘씩 예배당을 빠져나간다.

“필리핀에서 바이어 만날 때도 노래 하나면 끝이라니까요. 노래방 가서 미리 연습해간 필리핀 노래 한 곡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계약서 내밀면 바로 사인한다니까.(웃음)”

김 과장님이 정단비 씨에게 하는 이야기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처음 보는 여자가 있어 누군가 했더니 올 상반기에 입사한 친구였다. 해외영업 쪽 일을 하게 됐나 보다. ‘인도’라는 단어가 얼핏 들렸다.

사람들 속에 섞여 김 반장님과 함께 예배당을 나섰다.

“팀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이해해줘서 왔지. 내가 빠지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더 일을 해야 하니까. 다들 부러워해. 자기들도 하고 싶다면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멋진 백발을 지닌 그와 나눌 이야기가 기대가 됐다.

11일 오후 O2는 두산인프라코어 ‘위닝 팀(Winning Team) 합창단’ 연습을 함께 하고 돌아왔습니다. 기사는 연구개발팀의 박무영 주임연구원(30)의 눈으로 현장을 재구성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 합창단은 올해 8월 단원 모집과 사내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47명의 임직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신입사원부터 상무, 현장의 기술자부터 연구원과 사무직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였습니다. 9월 2일 첫 연습을 했고 이달 25일 사내에서 첫 공연을 합니다. 이들은 앞으로 재능 기부 형식을 통해 외부 공연도 나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그들의 뒷이야기가 더욱 기대됩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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