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 지킴이 박병선 박사, ‘직지’ 발굴… 외규장각도서 반환… 이국서 나홀로 ‘문화애국운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4일 03시 00분


우리 문화재 지킴이 박병선 박사: 1923∼2011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한 재프랑스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사진)는 해외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적 진실을 밝혀낸 선구적 사학자였다.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 박사는 서울 진명여고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6·25전쟁 이후 유학비자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었다. 소르본대에서 한국의 민속을 연구해 역사학 박사학위를,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 은사인 이병도 선생(1896∼1989)이 당부한 말을 잊지 않았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고문서를 약탈해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가서 잘 찾아보게.”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게 된 박 박사는 어느 날 프랑스 국립도서관 한국 코너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발견했다. 그는 ‘1377년’이라는 간행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1455년에 나온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빠른 금속 활자본.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었다. 그는 중국과 일본의 인쇄술 자료를 섭렵하고 프랑스 대장간을 돌며 금속활자 인쇄술을 연구했다. 또 직접 감자와 지우개로 여러 활자체를 만들어 비교하는 고증작업 끝에 ‘유네스코 세계 도서의 해’인 1972년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사실을 국제 학계에 입증해 보였다. 그는 ‘직지의 대모(代母)’로 불리게 됐고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이후 외규장각 의궤의 소재를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박 박사는 1979년 우연히 파리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에 파손된 책이 보관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곧바로 그곳을 찾았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낸 그에게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사직을 권고했다. 당시 한국 정부도 프랑스와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박 박사는 1980년 도서관에 사표를 낸 뒤에도 10여 년간 ‘도서관 이용자’로 외규장각 도서 열람을 신청해 한 권씩 목차와 내용을 정리했다.

1991년 서울대 규장각이 처음으로 반환을 주장하고 나섰고, 이듬해 우리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이를 공식 요구했다. 그의 열정적인 노력 덕분에 외규장각 도서는 올해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여 형식이었다. 박 박사는 생전 “프랑스 법원도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했다는 부분을 인정한 만큼 대여라는 형식을 하루빨리 ‘반환’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박 박사는 한인들이 펼친 항일독립운동 관련 사료 정리에도 힘썼다.

대한민국 문화훈장(1999), 국민훈장 동백장(2007), 제7회 비추미 여성대상(2007),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2010), 제7회 경암학술상 특별공로상(2011)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조선왕조의궤’ ‘한국의 인쇄사’ ‘한국의 무속사’ ‘한국의 역사’ 등이 있다.

평생을 혼자 살아온 박 박사는 지난해 1월 한국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은 뒤 10개월 만에 파리로 돌아가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속편을 준비해왔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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