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번역서는 버티기 힘든 美시장서 1%의 희망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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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4일 03시 00분


시애틀의 한 서점서 ‘엄마를…’ ‘빛의 제국’
꽂혀 있는 것 보고 ‘우리 책의 도전’ 실감

미국 5대 도시 돌며 낭독회… 소설가 하성란-한유주 씨 미국 5개 도시에서 열린 순회 낭독회를 마치고 돌아온 소설가 하성란(오른쪽) 한유주 씨. “외국 서적 비율이 1%밖에 되지 않는 미국 출판 시장에 한국문학이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미국 5대 도시 돌며 낭독회… 소설가 하성란-한유주 씨 미국 5개 도시에서 열린 순회 낭독회를 마치고 돌아온 소설가 하성란(오른쪽) 한유주 씨. “외국 서적 비율이 1%밖에 되지 않는 미국 출판 시장에 한국문학이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두 여성 소설가의 나이 차는 열다섯. 꽤 차이 나는 연배지만 둘은 살가운 자매처럼 재잘거리며 서울 청계천 산책로를 걸었다. 문단의 중견 하성란 씨(44)와 주목 받는 기대주 한유주 씨(29)는 국제교류진흥회의 초청으로 2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일정으로 미국 5개 도시를 돌며 낭독회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동안 꼭 붙어 다녔지만 둘은 할 얘기가 남은 듯했다. 올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적 미국 진출을 계기로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22일 청계천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주부 작가인 하 씨는 돌아오자마자 지난 주말 김장을 담갔고, 한 씨는 밀린 대학 강의와 집필 마감을 몰아서 처리하느라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다.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돼 피곤하지만 미국 낭독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둘은 입을 모았다.

하 씨는 시애틀 다운타운의 서점을 방문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가에 신경숙 선배의 ‘엄마를 부탁해’와 김영하 씨의 ‘빛의 제국’이 꽂혀 있는 것을 봤어요. 미국 출판 시장에서 외국 번역서의 비중은 1%밖에 되지 않는데, 그 한국 책들을 보니 우리 책의 해외 진출이 시작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죠.”

서점의 눈에 띄는 판매대에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장본들이 전시돼 있었다. 한국 문학과는 대접이 달랐다. 하 씨는 “일본은 오래전부터 미국 시장을 상대로 마케팅을 해왔다. 문학과 문화는 같이 가야 하는 것 같다. 미국인은 아기자기한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데 하루키 책 속에는 그 문화가 그대로 들어있어 작품을 친숙하게 만든다. 해외에 한국 문학뿐 아니라 문화를 알리는 일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씨가 쾌활하게 웃으며 거들었다. “언니(하성란)랑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요. 미국 시장은 순수문학이 거의 없고 상업적 색깔이 강하지만 그래도 한국 순수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뭐 이제 시작이니 큰 걱정은 안 해요.”

둘은 시애틀의 워싱턴대, 프로보의 브리검영대, 미니애폴리스의 미네소타대 등 5개 대학에서 낭독회를 가졌다. 대부분 한국어나 한국문학 전공 학생들이 청중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한 씨는 브리검영대를 꼽았다.

“몰몬교도가 주로 다니는 학교였는데 선교차 한국을 왔다 간 학생들이 많아 대부분 한국어가 유창하더라고요. 고전문학과도 있어서 이두나 향찰 얘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죠.”

일정이 바빠 제대로 된 관광 한 번 하지 못했다고 두 작가는 아쉬워했다. 한 씨는 뉴욕에서 두 달 머문 적이 있고, 하 씨는 멕시코를 갈 때 한 번 미국을 경유한 게 전부라고 했다. “도시별로 굉장히 폐쇄적이고 다른 문화를 가진 것 같아요. 공기마저 다른 것 같았죠.”(하 씨) “시애틀은 영화에서 보는 거랑 똑같고, 어바인은 광대한 골프장 같았어요. 도시마다 개성이 강했고, 하늘 색깔마저 달라보였죠.”(한 씨) 먹을거리에 대해선 둘 모두 “정크푸드 일색인 미국 식단에 실망했다”면서도 “로컬 생맥주의 맛은 단연 최고였다”며 까르르 웃었다.

지난해 장편 ‘A’를 낸 하 씨는 단편집을 준비하고 있다. 한 씨는 이달 말 새 소설집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문학과지성사)를 낸다. “작품의 해외 진출에는 번역과 마케팅이 중요하지만 결국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작품을 쓰는 것밖에 없다”는 게 이들이 오늘도 원고를 쓰고, 다듬는 이유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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