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8시 빅토리아 만의 축제 현장. 마천루 불빛에 레이저 조명 쇼까지 더해 야경은 더더욱 환상적이었다. 축제의 핵심은 와인테이스팅. 180개나 되는 와인부스마다 시음용 와인이 쌓여 있다. 음식부스도 70개. 치즈 소시지 햄 등 동서양 음식이 두루 섞였다. 테이스팅은 유료. 찾아가 선매입한 쿠폰으로 결제한다. 와인잔은 입장할 때 나눠준다.
올해 슬로건은 ‘동서양의 조화’. 말 그대로 동서양의 와인이 총망라됐다. 축제 파트너인 프랑스 보르도 시를 비롯해 칠레 이탈리아 미국 호주가 참여했다. 일본도 보였다. 음식도 같은 맥락이다. 다양한 서양요리 사이에 동양요리로 전통 중국식이 주류를 이뤘다. 새우와 돼지고기 꼬치요리, 양념완자, 쇠고기양념구이 등. 와인과 잘 어울렸다.
축제는 끝나도 와인&음식 이벤트는 계속되고 있다. ‘홍콩의 홍대거리’인 란콰이퐁에서는 5, 6일에, ‘홍콩 속 작은 유럽’ 소호에서는 12, 13일에 거리 카니발로 이어졌다. 19, 20일 고급 레스토랑이 모인 침사추이 이스트에서도 음식축제가 열렸다. 수입포도로 ‘홍콩산 와인’도 만들어
홍콩은 도시국가다. 천연자원도 없다. 그런데도 부를 누리는 배경은 낮은 관세를 무기로 한 동서양 물류유통이 핵심이다. 홍콩을 거치는 온갖 물품 중엔 포도도 있다. 그게 홍콩와인의 원료다. 포도가 나지 않는데도 단 하나지만 와이너리가 존재하는 배경이다. 그곳은 2007년 문을 연 ‘The 8th Estate Winery’. 위치는 홍콩 섬 남단 애버딘 인근의 압레이차우 공장지대다. 와이너리는 허름한 건물의 3층.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한기(寒氣)가 느껴졌다. 들여다보니 와인저장용 오크통이 즐비했다.
생산량은 연간 50t 포도로 양조한 10만 병. 가격은 120∼320홍콩달러(약 1만8000∼4만8000원)로 저렴한 편이다. 와인 레이블을 보자. 포도의 원산지와 함께 ‘홍콩제품’이란 글씨가 명료하다. 수입 포도는 주로 이탈리아산. 프랑스 미국 호주 등 삼국의 포도를 섞어 새로운 맛과 향취의 와인을 만드는 실험도 하고 있다. 이곳 경영자인 리자네 투사 씨의 말. “최고 품질의 보르도 와인이라도 멀리 운반되는 과정에서 변질되는 수가 있지요. 하지만 저희 와인은 다릅니다. 산지에서 직접 먹는 셈이지요.” 군수품 벙커가 탈바꿈한 와인셀러
와인셀러도 있었다. 홍콩 섬에 있는 ‘크라운 와인셀러’다. 셀러는 와인을 숙성시키면서 보관하는 매우 중요한 시설. 그런데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군수품을 보관하던 벙커(3개). 그걸 개조해 2004년부터 와인저장소로 쓰고 있다. 벙커라면 칙칙한 이미지부터 떠오를 터.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재까지 갖춘 ‘고품격’ 실내다. 지하벙커의 이점은 자연스러운 냉장기능. 이 덕분에 이곳은 최상의 와인셀러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운영은 회원제다. 현재 200만 케이스(한 케이스는 12병)가 항온항습(섭씨 13도, 습도 70%)의 실내에 보관 중이다. 홍콩엔 크고 작은 와인셀러가 10여 곳 있지만 지하시설로는 여기가 유일하다. 평생 회원가입비는 서비스별로 1만8000∼2만8000홍콩달러(약 270만∼420만 원). 보관료(한 달 기준 병당 2홍콩달러)와 운송료(6병까지 200홍콩달러)는 별도다. 레스토랑도 딸렸는데 비회원도 예약하면 이용이 가능하다.
800여 명의 회원 중엔 한국인도 4명 있다. 보관 중인 와인 중 최고는 전 세계에 단 두 병뿐인 18세기산이다. 시가 3억8000만 홍콩달러(약 570억 원)짜리로 주인은 중국인이라고.
‘와인자판기’ 들어본 적 있나요
와인 소비가 급증하는 홍콩 도심에선 이제 와인숍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개중에는 독특한 기계로 들어찬 곳도 있다. 원하는 와인을 골라 마실 수 있는 와인자판기 숍이다.
대표적인 곳은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빈티지(CV)’. 캘리포니아산 와인전문 숍으로 수십 대의 와인자판기가 빙 둘러서 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카드에 돈을 충전한 뒤 자판기에 꽂고 고르면 된다. 선택은 세 개. ‘테이스팅(Tasting), 하프(Half), 풀(Full)’. 배출량이 작은 것부터 큰 순이다. 마실 와인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패드에 다양한 와인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담겨 있다. 안주도 있다. 감자튀김과 피자, 토스트 등.
야외 테라스에 앉아 와인글라스를 들었다. 보석같이 빛나는 홍콩 야경이 유리표면에 어렸다. 거기 담긴 와인 역시 술의 보석, 레드와인. 그걸 홀짝이자 순간 혀와 뇌리에서 와인 판타지가 펼쳐졌다. 둘의 절묘한 조화의 산물이다. ‘아시아 와인 허브’라는 홍콩의 새로운 타이틀이 전혀 생소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와인 면세 후 수입폭발, 세계 최대 시장 떠올라▼
먼저 국내 수입 와인의 가격 구성 요인부터 살피자. 항구에 도착하면 ‘운임보험료 포함가격(CIF·Cost, Insurance and Freight)’의 68.25%가 세금으로 부과된다. 항목별로 보면 이렇다. 관세 15%, 주세 30%, 교육세는 주세가격의 10%, 부가가치세 10%. 원가 1만 원짜리 와인이 한국 땅에 닿는 순간 1만6825원이 되는 셈이다.
거기에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며 마진이 추가되면서 가격은 뛴다. 수입상∼도매상∼소매상을 거치며 붙은 마진까지 합치면 소비자 구입가는 원가의 7, 8배나 된다.
홍콩도 2008년 완전 면세 전에는 세금이 80%나 부과됐다. 면세는 수입 폭발로 이어졌다. 첫해에만 79.5% 늘었다. 이어 매년 전해보다 40.8%, 73.2% 증가했다. 올해는 8월 현재 66억 홍콩달러(약 8억5000만 달러). 최대 와인시장이었던 런던 뉴욕을 제친 전 세계 최고다. 홍콩=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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