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쏟아지는 나른한 오후. 고양이가 방 안 구석에서 배를 깔고 누워 꾸벅꾸벅 존다. 주인이 들어와도 잠시 눈을 뜰 뿐 이내 감는다. 새침한 고양이, 무심한 고양이. 어느 시간을 거슬러와 너는 내 앞에 나타난 것일까. 너는 고양이지만 고양이가 아니다. 호랑이다. 작고 앙증맞은 빨간 혀와 노란 눈동자. 나는 그 속에 네가 숨기고 있는 다른 너를 본다. 억겁을 이어온 고양이족(族)의 명멸과 오욕의 역사, 신화적 시간을 가만히 읽는다.》 ‘이달에 만나는 시’는 12월 추천작으로 최정례 시인(56)의 ‘호랑이는 고양이과다’를 선정했다. 이 시는 지난달 나온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최 시인은 9년째 수컷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품종과 이름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냥 뭐 한국 잡종이에요. 이름은 ‘양이’, 그냥 ‘고양이’라고 불러요. 호호.”
3년 전쯤이었나. 시인은 하루 대부분을 낮잠에 빠져있는 고양이에게서 ‘거대한 침묵’을 읽었다. “고양이가 호랑이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고양이과에 속한다는 생물학적 분류법이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죠. 모든 사물은 자기 속에 그 존재의 부피보다 더 큰 의미를 품고 있고, 고양이가 침묵과 함께 발톱을 품고 있는 것처럼 장미꽃도 침묵과 가시를 함께 갖고 있죠.”
최 시인은 “모든 사물이 이질적인 것을 함께 품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이 세계의 본질이며 나 또한 온전히 나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건청 시인은 “격절된 사물과 사물을 연결해주는 특이한 상상력이 있고, 그런 상상력이 이루어내는 말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자명한 것들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고, 낯익은 것들은 실은 낯선 것을 감춘 것들이다. 여기서의 삶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최정례는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평이한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장석주 시인은 평했다.
이원 시인은 “상처나 기억의 시간을 유머러스한 언어로 풀어 보이는 힘. 그러한 최정례 특유의 언어는 사슴이 튀어나오는 꽃핀 미래를 나타나게 한다”고 말한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가파르게 휘몰아치던 더운 피도 잠시 순해질 법한 한 해의 끝에서 ‘자기 본래의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우리는 누가 앉았다 떠난 한 그루인가.”
김요일 시인은 이준규 시인의 시집 ‘삼척’(문예중앙)을 추천했다. 그는 “이준규의 시는 다르다. 낯설다. 새롭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재재거리는 이준규의 언어는 음악의 대위선율처럼 시집을 덮고 난 후에도 묘한 울림으로 또 다른 선율을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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