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故 정기용씨 마지막 작품 김해 ‘기적의 도서관’ 문열어
지역 기후-역사까지 고려해 설계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건축가 역시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닌,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다.”(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올 초 지병으로 타계한 건축가 정기용 성균관대 석좌교수(1945∼2011·사진)의 마지막 설계 작품인 김해 기적의 도서관이 11월 30일 문을 열었다. ‘창의적인 어린이 전용 도서관을 짓는다’는 목표 아래 2003년부터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과 함께해온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정 교수의 대표작으로 꼽혀왔다. 순천, 진해, 제주, 서귀포, 정읍 등 다섯 곳에 도서관을 세웠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안찬수 사무처장은 “김해 기적의 도서관은 정 교수의 유작이자 결정판”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님은 ‘기적의 도서관’이 한 건축가의 상상력이나 기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셨어요.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와 엄마, 그리고 지자체와 시민단체의 경험과 관찰, 다양한 발상에 건축가의 지혜를 조금 더해 완성했을 뿐이라는 거죠. 그런 감응(感應)의 결정체가 바로 이 도서관입니다.”
2008년 2월 정 교수는 도서관 터인 경남 김해시 장유면 율하리 지역을 처음 답사했고, 1년 후인 2009년 3월 도서관의 큰 얼개를 완성했다. 안 사무처장은 “김해 지역의 풍토와 기후, 역사, 살아가는 이들의 상황까지 고려한 설계였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당시 이 지역엔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고 있었다. 정 교수는 “이 도서관이 ‘아파트 숲’이라는 불모지적 상황을 치유하는 ‘생명의 정원’이 돼야 한다”고 시종일관 강조했다. 도서관 내부 구석구석엔 아이들이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한옥의 다락같은 공간이 있어야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2010년 8월 정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으셨죠. 당시 건강이 무척 좋지 않으셨는데도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꼼꼼히 둘러보셨어요. 도서관이 새 건축물인데도 오래된 건물처럼 지역에 녹아든 것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이렇게 개관하는 모습을 함께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입니다.”(안찬수 사무처장)
11월 29일 저녁에 있었던 개관 전야제와 30일 개관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정 교수의 부인 김희경 여사는 “남편과 함께 다락이 있는 공간을 꿈꿨다. 그 꿈이 그대로 실현된 도서관을 보니 무척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와, 여기 놀이터 같아.”
이날 오후 3시 개관식 테이프 커팅과 함께 신발을 벗고 도서관 안으로 뛰어 들어간 대여섯 살 아이들은 하나같이 함성을 질렀다. ‘4차원의 방’ 계단을 따라 뛰어 올라가니 자그마한 다락이 나왔다. 한 아이가 두 다리를 뻗고 앉았다. 아이들은 구석구석 숨은 공간을 귀신처럼 찾아냈다. 도서관 1층 로비에는 정 교수를 추모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개관식 행사는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린 비 때문에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자가 도서관 내 영유아방에서 만난 한 엄마는 “비가 올 때 이곳이 더 좋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책도 보고, 바닥에 누워 쉬기도 하는 따스한 놀이방 역할을 제대로 하기 때문이다. 볼이 발그레한 아이, 오래된 것 같아 더 정겨운 새 도서관 건물, 안경 쓴 어린아이 같은 정 교수의 사진 속 미소가 꼭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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