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남자 둘이 직장도 버리고 축구 보러 유럽을 가다니요. 그것도 장장 75일간이나 말이지요.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10월 1일자부터 12월 3일자까지 5회에 걸쳐 ‘두 청춘의 무작정 유럽 축구기행’을 연재한 우승호 조영래 씨(이상 31세)가 1일 귀국했습니다. 여전히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다는 두 ‘청춘’을 만났습니다.
청춘이라고는 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다. 조영래=막상 가보니 축구 보러 온 한국인 중에 거의 최고령자였다.
우승호=어떤 무리에 섞여도 ‘아저씨’로 통했다. 그 나이에 직장까지 내던졌다.
우=여태껏 살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마흔이 되어서 ‘아, 10년 전에 갔다올걸’ 하는 후회를 하기 싫었다.
조=축구기행 자체가 직장을 다니면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계획은 언제 세웠나.
조=5월 말, 맨체스터 유나티이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면서였다. 경기가 끝난 새벽녘에 우울해졌다. 진짜 가고 싶어졌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더 서두른 감도 있다.
우=올해 상반기부터 서로 직장 일이 힘들다고 진지하게 얘기하곤 했다.
직장에 사표를 낼 때 어땠나.
우=울컥했다. 막연한 두려움도 생겼다. 갔다 오면 또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봐야 하고, 옮긴다고 더 좋은 데 간다는 보장도 없고….(우 씨는 유명 햄버거체인의 점포 매니저 일을 3년간 했다.)
조=사표 내고 바로 여행계획 짜느라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와서 ‘지금 회사원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할 때 내가 백수라는 게 확 실감났다.(조 씨는 대형 광고대행사 AE로 5년을 일했다.)
75일간 생활은 어땠나.
조=“어째 평온한 날이 하루도 없냐” 하고 서로 말했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매일의 미션이 생겼다. 숙소를 잡는 게 가장 힘들었다.
우=렌트한 차에서 사흘 정도 잤다. 생전 처음 보는 길에서 운전하는 것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종종 먹통이 돼 애를 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우=첫 경기다. 바르셀로나 홈경기장인 캄푸누에 들어설 때, 눈앞에 펼쳐지는 녹색 그라운드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우리가 유럽에 축구를 보러 왔구나’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설이 좋지 않아 놀랐다.
조=맨유 연습장에서 박지성 선수를 만난 것. 처음 봤을 때는 어리벙벙했다. 박 선수가 차창을 내리고 “안녕하세요” 하는데 약간 건방진 듯도 했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포스(force·힘)가 느껴졌다.
충격적인 순간은….
조=맨유 홈경기장인 올드트래퍼드에 갔을 때 봤던 야외의 남성 소변기였다. 우리도, 중국인 관광객들도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막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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