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1년에 365권 읽었더니… 백수 청년이 억대 연봉 학원장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인터넷 ‘폴레폴레 카페’ 회원들의 ‘운명을 바꾸는 독서’ 이야기

독서를 통해 삶을 바꾸는 사람들의 모임인 인터넷 카페 ‘폴레폴레’ 회원들이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커피숍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서천재 홍대리’의 작가 이지
성, 문준호, 홍정수, 김윤근, 유근용, 정회일 씨.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독서를 통해 삶을 바꾸는 사람들의 모임인 인터넷 카페 ‘폴레폴레’ 회원들이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커피숍에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서천재 홍대리’의 작가 이지 성, 문준호, 홍정수, 김윤근, 유근용, 정회일 씨.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 아토피 증상과 스테로이드제(劑) 부작용으로 6년간 집에서 누워만 지내던 청년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억대 연봉의 영어학원장으로 변신한다. 14년간 출판사로부터 외면받았던 무명작가가 총 200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생을 바꾼다. 공고 출신 젊은이가 영어학원 강사로 변신해 명문대 출신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목숨을 건 독서’를 통해 인생을 바꾼 이지성(38) 정회일 씨(31)와 ‘폴레폴레’(아프리카어로 ‘천천히’라든 뜻) 카페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 프롤로그: 2000년 겨울

“엄마는 왜 나를 그 병원에 데려갔어! 모든 게 엄마 때문이야….”

아파서 집 안에서 누워만 지내던 정회일 씨는 대학도 휴학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7년간 아토피 증세에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았던 게 문제였다. 처음엔 연고로 시작했다. 증세가 낫지 않자 점점 센 약, 주사로 확대됐다. 스테로이드제 장기 복용은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다. 인체의 면역력이 약화돼 어떤 상처나 염증도 잘 낫지 않았다. 계속 복용할 경우 쇼크사할 수 있다는 말에 약을 끊었다.

2000년 그 약을 끊자 그동안 약 기운에 잠자고 있던 열기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물주전자처럼 온몸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루에 찬물 20L를 마셔도 갈증은 계속됐다. 눈물이 말라서 앞을 볼 수 없었고, 눈썹은 다 빠져버렸다. 온몸에서 피와 진물이 흘렀고, 입과 턱이 찢어져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심장은 불규칙적으로 뛰고 식구들 발소리에도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루하루 괴물로 변해가는 자신을 보며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설상가상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집안은 억대의 빚에 쪼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부모님을 원망했고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3년간 죽을 고비를 넘긴 정 씨는 2005년 겨울 무심결에 책을 들었다. 탤런트 김혜자 씨가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였다. 책 속에서 아프리카 어린이가 “내 꿈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한 말을 읽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수많은 아이들이 열 살도 안돼 죽어가고, 지뢰를 밟아 팔다리가 잘려 있었다. 그동안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만을 원망해왔는데, 그들에 비하면 자신의 고통은 별것 아니었다.

이듬해 그는 6년 만에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나 막막했다. 조언을 해줄 사람을 찾아다녔다. ‘20대를 변화시키는 30일 플랜’이라는 책을 쓴 작가 이지성 씨에게 수차례 e메일을 보냈다.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 2007년 5월 우체국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영나한’ 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정회일 씨. “독서를 통해 삶이 변화하고 성장했던 제 분명한 경험을 20대 청춘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영나한’ 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정회일 씨. “독서를 통해 삶이 변화하고 성장했던 제 분명한 경험을 20대 청춘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잠깐 소포를 부치고 올게. 책 보면서 기다려.”

정 씨는 작가 이지성 씨를 우체국에서 만났다. 이 씨는 막 출간된 자신의 책 ‘꿈꾸는 다락방’을 선물로 준 뒤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30분, 1시간쯤 지났을까. 정신없이 책에 빠져 읽고 있던 그는 이상한 느낌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 씨가 지켜보며 서 있었다. “왜 왔다고 말하지 않으셨어요”라며 미안해하는 정 씨에게 “책 읽는 모습에서 가능성 있는 친구라고 느껴져 방해할 수 없었다”며 웃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느냐”는 정 씨의 질문에 이 씨는 “앞으로 1년 동안 365권의 책을 읽고 오면 말해주겠다”고 했다. 정 씨는 황당했다. “한 달에 책 서너 권 읽기도 힘겨운데 어떻게 매일 한 권씩 읽느냐”고 반문했다. 이 씨는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나약한 인간이라면 찾아오지도 말라”고.

당시 정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1시간씩 독서를 하고, 점심시간에도 짬을 내 책을 읽었다. 지하철에서는 전동차 안에서는 물론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읽었다. 컴퓨터 부팅을 기다리는 몇 초간의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빌 게이츠나 안철수 씨는 엘리베이터에서도 한 달에 몇 권씩 책을 읽는다”는 말을 듣고 그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책을 펴들었다.

처음 3개월 동안 자서전과 수기만 100권 넘게 읽었다. 자신이 꿈꾸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독서의 폭은 문학, 예술, 인문고전으로 다양하게 넓어졌다. 마침내 1년간 365권의 독서에 성공했다.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이었다. 늘 실패자로 살아왔던 그는 처음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시간을 1초 단위로 쪼개 쓰는 ‘시간 관리법’도 자연스레 터득했다.

○ 독서 멘토 이지성 작가


정 씨의 독서 멘토(스승, 조언자)인 이지성 씨는 ‘리딩으로 리드하라’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꿈꾸는 다락방’ ‘독서천재 홍대리’ 등의 책이 총 200만 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러나 정 씨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씨도 무명작가였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14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그는 자신이 쓴 원고를 80곳이 넘는 출판사에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살 곳을 찾아 경기 성남시의 달동네로 이사했다. 창고 같은 거처에서 3년 6개월을 살았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던 이웃은 매일 그의 방 창문 아래서 악을 써댔다. 집 앞 슈퍼마켓에서 동네 주민들은 밤낮으로 술판을 벌였다. 그는 자신보다 더 비참한 환경에서도 독서에 매진한 위인들을 생각하며 버텼다. “성호 이익이 ‘어머니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이 책을 읽으라’고 한 말처럼 내게 독서는 간절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로 주목을 받자 수많은 청년들과 CEO들이 독서법과 자기계발 노하우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1년간 365권의 책읽기를 실천해 그의 정식 멘티(멘토의 지도를 받는 사람)가 된 사람은 정 씨가 처음이었다.

“목표를 정해주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365권을 읽는데 3650일(10년)이 걸립니다. 자신의 한계에 격렬하게 도전하다 보면, 내 속에 잠자던 잠재력을 만나고, 잠재력이 폭발할 때 책이 나를 이끌어가는 변화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 독서의 3단계

정 씨는 이후에도 이 씨가 가르쳐 준 ‘독서의 3단계’에 맞춰 총 2000여 권의 책을 꾸준히 읽었다. 첫 단계인 ‘프로리딩’은 자신의 업무관련 책 100권을 읽음으로써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인 ‘슈퍼리딩’은 자서전과 자기계발서를 읽음으로써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방식을 갖추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인 ‘그레이트리딩’은 수백 년간 살아남은 명작인 인문고전 독서로 세상을 바꾸는 리더로 사는 것이다. 인문고전 독서는 요즘 CEO들에게 인기다.

지난해 이 씨가 만난 한 청년은 인문고전을 읽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며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비정규직 노동자인 어머니가 준 용돈에서 30만 원을 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호된 꾸지람만 듣고 돌아가야 했다. 이 씨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나서는 건 사회악”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청년이나 직장인들에게 우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있는 프로리딩, 슈퍼리딩 독서를 권한다. 그는 “책 한 권에는 30∼40년의 작가의 경험이 담겨 있다”며 “자기 분야의 책 100권을 읽으면 3000년의 내공을 쌓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 씨도 관심분야인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독학으로 영어공부법 책만 100권 이상 읽으며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어나갔다. 과외도 시작했다. 처음엔 무료로, 나중엔 시간당 1만∼2만 원씩 받았다. 이후 스터디룸을 빌려 강의를 했고, 올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영나한’(영어연수 나는 한국에서 한다) 학원을 열었다.

외국에 나가본 적도 정 씨의 영어공부 비법은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남을 가르치다 보면 더 열심히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기 때문”이라며 “무대에 서야 말이 트인다”고 말했다. 또 그는 “외국인과 5분 이상 대화를 못하는 건 발음, 문법 탓이 아니라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라며 “독서를 통한 다양한 관심사는 외국인과 밤새워 대화할 수 있는 무기”라고 말했다.

○ 에필로그: 세상을 바꾸는 독서 멘토링

이지성 씨는 서울역 인근 빈민촌에서 청년들을 위한 독서모임을 지도하고 있다. 정회일 씨도 학원에서 독서 멘토링과 시간관리법 특강으로 인기가 높다. 인터넷에는 독서를 통해 삶을 바꾸고자 하는 ‘폴레폴레’ 카페도 생겼다.

이달 초 서울 신당동의 커피숍에서 만난 회원 중에는 유근용 씨(30)도 있었다. 그는 공고를 나와 전문대를 평균학점 1.7로 졸업했지만,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명문대 출신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됐다. 그는 “어릴 때 공부를 안 하면 평생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회의 편견을 날려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정수 씨(22·여)는 “책을 읽고 나니 처음엔 생각이 바뀌고, 이어 말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었다”며 “요즘은 헬스클럽에서 사이클을 타면서도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대학 자퇴생인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사회 각 분야의 성공한 사람 100여 명을 찾아다니며 멘토를 부탁하는 적극적인 젊은이로 변신했다. 샐러리맨에서 온라인 광고회사 CEO로 변신한 문준호 씨(45)는 “10여 년간 책을 읽고 정리해놓은 독서노트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지성, 정회일 씨에게 요즘의 청춘 세대들에게 해줄 말을 물었다.

“‘88만원 세대’가 아파하고, 사회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만의 내공을 길러야 한다. 20대에 준비해야 30대 이후에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생긴다.”(이)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고 합니다. 과연 시간이 없다고 술을 못 마시고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있을까요? 술 마시고, 친구 만나고, 인터넷 서핑을 해도 인생이 안 바뀌었다면, 책을 읽어보세요.”(정)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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