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114>우렁이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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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시골밥상에 올랐던 ‘엄마표 반찬’

된장찌개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토종음식이다. 여기에 우렁이까지 넣어서 끓인 우렁이 된장찌개는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쫄깃쫄깃한 우렁이를 건져 된장이나 쌈장을 척척 얹어 상추와 함께 싸 먹으면 거의 밥도둑 수준의 요리가 된다. 게다가 어머니 손맛이 떠오르는 전형적인 추억의 시골밥상에 올랐던 반찬이니 음식 자체에서 짙은 향수를 함께 맛볼 수 있다.

아무리 우렁이 된장찌개를 미화해봤자 특별한 요리도 아니고 예전 농부가 일손이 한가할 때 논에서 잡은 우렁이를 된장찌개에 넣고 끓인 평범한 음식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할 것만도 아니다. 우렁이를 바라보던 옛날 조상들의 시선이 현대인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렁이 껍데기 속에서 예쁜 각시가 나와 일도 도와주고 결혼도 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구전동화 ‘우렁이각시’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은 우렁이를 특별하게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렁이를 넣고 끓인 국을 먹지 않았다는 조선의 선비도 있다. 18세기 초반의 유학자인 권상하가 문집인 ‘한수재집(寒水齋集)’에 우성서(禹聖瑞)라는 진사의 행장을 적었다.

“하루는 집안에서 우렁이로 된장국을 끓여 올리니 우공이 홀로 상을 물리며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듣건대 우렁이는 어미를 죽이고 세상에 나온다고 하니 차마 입에 댈 수가 없다’고 하자 듣는 사람들이 모두 우공을 하늘이 낸 효자라고 말했다.”

우렁이는 서식환경이 나빠지면 자신의 살을 먹여서 새끼 우렁이를 키운다고 했다. 이렇게 키운 우렁이가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어미는 이미 살이 모두 없어져서 껍데기만 물에 둥둥 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렁이는 자식들에게 퍼주기만 하는 모정(母情)의 상징으로 여겼다. 우 진사가 우렁이 국을 먹지 않겠다고 한 이유다.

우렁이를 넣고 된장국이나 찌개를 끓여 먹은 역사는 꽤 깊다. 사실 18세기 초 우 진사의 고사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논농사 지역에서는 진작부터 우렁이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모양이다. 13세기 중국 송나라 때 오자목이 쓴 ‘몽양록(夢梁錄)’에도 당시 남송의 수도였던 항저우(杭州) 야시장에서 우렁이 국을 팔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런 우렁이를 동양에서는 몸에 좋다고 여겼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우렁이는 열독(熱毒)을 풀어 갈증을 멈추게 하고 부은 것을 가라앉히며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하여 배 속에 열이 몰리는 것을 없앤다고 했다. 또 논밭에서 사는데 생김새가 둥글고 빛깔은 푸르스름한데 가을에 잡아 쌀 씻은 물에 담가 진흙을 뺀 후에 삶아 먹는다고 덧붙였다. 명나라 때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황달과 숙취에 좋으며 매일 끓여서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했으니 우렁이 된장국을 해장국으로 먹는 근거가 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우렁이가 약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연산군일기’에 연산군이 경기관찰사에게 약에 쓸 우렁이 40개를 바치라며 전교를 내렸고, ‘정조실록’에는 우렁이로 고약을 만들어 종기가 난 곳에 붙였더니 약간의 차도가 보이는 것 같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사소하게 여겼던 우렁이지만 지극한 모정의 상징에서부터 우렁이각시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약효에 이르기까지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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