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이면 팥죽을 먹는다. 귀신이 팥의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팥죽을 먹으면 나쁜 기운의 접근을 막아 액땜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문기둥에 팥죽을 뿌리기까지 했다.
지극히 미신적인 믿음인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하필 동짓날 팥죽을 먹는지, 또 귀신은 왜 팥의 붉은색을 싫어하는지 등등. 아무리 옛날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도 터무니없게 들린다.
사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것은 우리만의 풍속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도 동지 팥죽이 있다. 한중일 삼국의 고문헌은 모두 동지 팥죽의 기원을 6세기 초, 중국 양(梁)나라 때 종름이 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찾는다.
‘동짓날 해의 그림자를 재고 팥죽을 끓인다.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서다.’ 이유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공공씨(共工氏)에게 재주 없는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역귀(疫鬼)가 됐다.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지에 팥죽을 끓여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공공씨는 고대 중국 신화에서 강을 다스리는 신이다. 황허 강이 범람하는 것도 공공씨가 심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 아들이 죽어서 역귀가 됐는데 역귀란 그냥 귀신이 아니라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이다. 그리고 역귀가 무서워한 것도 팥의 붉은색이 아니라 팥 그 자체다. 아마 팥의 영양분을 무서워했을 것이다.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강물이 범람해 수인성 전염병이 나돌았는데 뜨거운 팥죽을 먹고 예방을 했거나 치료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귀신을 물리치려고 팥죽을 먹는다는 풀이는 형초세시기에 나오는 주술적인 묘사만 강조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영조 임금이 ‘귀신을 쫓는다며 문에다 팥죽을 뿌리는 공공씨의 이야기는 정도에 어긋나는 것이니 그만두라고 했음에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으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도 동지 팥죽의 유래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 왜 하필 동짓날에 그것도 팥죽을 먹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풀이가 있지만 동지 팥죽을 설날 먹는 떡국처럼 새해에 먹는 음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유력하다.
우리 속담에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새해 떡국을 한 그릇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는 말과 통한다. 예전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했다. 새해에 버금가는 날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지금의 음력을 달력으로 채택하기 전인 중국 주나라 때는 음력 11월이 한 해의 시작이었다. 동짓날이 새해 첫날이었던 것이다.
사마천도 ‘사기(史記)’에 동지는 태양이 되돌아와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풀이했으니 곧 새해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양기가 되살아나는 날이다. 이날 먹는 음식이 팥죽이었으니 ‘영조실록’에도 ‘동짓날 팥죽은 양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뒤집어 말해 팥죽은 고대의 새해인 동짓날에 먹는 신년 음식으로 새해의 공통소망인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원이 담겨 있다. 동지 팥죽을 먹고 나쁜 귀신을 쫓아 액땜을 한다는 의미 역시 새해에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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