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천국 제주]제주가 준 선물, 다희연 ‘난쟁이’ 녹차나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동굴계 위에 자리잡은 다희연의 아침 안개가 신비롭다. 제주=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동굴계 위에 자리잡은 다희연의 아침 안개가 신비롭다. 제주=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다희연의 녹차 나무는 모두가 ‘난쟁이’다. 묘목을 심은 지 5년, 쑥쑥 자라 사람 키 높이가 되어야 할 것이 1년에 6cm밖에 크지 않았다. 고작 무릎 높이다. 거대한 차밭을 기대한다면 실망이다. “제초제 뿌리고 질소비료 듬뿍 줬다면 훨씬 컸겠지요.” 다희연 직원들은 더딘 성장을 볼 때마다 이런 유혹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화학비료, 농약, 제초제를 쓰지 않겠다는 ‘3무(無)원칙’을 지켰고 2008년 처음 수확한지 3년 만에 ‘다희연의 난쟁이’는 한국 녹차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 원시림의 선물

제주는 차밭의 최적지다. 비가 잘 빠지면서도 습도조절이 잘돼야 하는 모순된 조건을 화산 지형이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다희연은 여기에 또 한 가지 특별한 자연의 혜택을 입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윗밤오름에 부닥친 뒤 방향을 틀면서 곶자왈(밀림과 돌이 뒤엉킨 지역)과 용암동굴을 형성했는데, 바로 그 위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차밭이 된 땅은 처음엔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원시림이었다. “6개월간 제주를 열 바퀴 돌며 찾아냈지만, 차밭을 만들기 불가능해 보인 곳”이었다. 지금도 차밭 외곽 숲은 한 발도 들이밀기 어려울만큼 넝쿨과 나무, 바위들로 빈틈이 없다. 차밭 기초 지반을 다질 때 우연히 발견한 동굴 2곳은 당시의 원시림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화산에서 분출된 묽은 용암과 진한 용암이 뒤엉켜 만든 기묘한 동굴 속에 생태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 현재 거문오름의 용암동굴은 만장굴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다희연의 동굴은, 여인의 한복 치맛자락 밑으로 살짝 드러난 버선처럼 거문오름의 신비를 보여주는 귀중한 선물이다. 이 ‘동굴의 다원’에서 한국 녹차의 희망이 자라고 있다.

○ 3다(多) 제주에 3무(無) 원칙

단지 자연의 혜택만 거론한다면 다희원은 약간 특별하다. 그러나 원시의 청정을 지키겠다는 원칙 때문에 다희연은 매우 특별한 존재로 떠올랐다. 가격경쟁을 의식해 직원들이 농약 사용을 건의할 때면 환갑을 넘긴 박영순 회장이 다그쳤다. “질소비료가 필요하면 콩을 심으면 된다. 제초제를 쓰지 말자. 내가 직접 뽑겠다. 살충제도 필요 없다. 해충을 자연페로몬으로 유도해 잡으면 된다.” 고집스러운 3무 원칙 덕에 다희연은 국내 유일의 명품 발효녹차를 만들어냈다. 알려진 대로 녹차의 카테킨 성분은 자연이 선물한 최고의 건강성분 중 하나. 그러나 기대만큼 인체에 충분히 흡수되지는 않는다. 약학박사인 박 회장은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흑설탕을 이용해 녹차잎을 100일간 정성들여 발효시켜 카테킨을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로 자연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술 마신 다음 날 발효녹차를 마시면 온몸으로 온기가 퍼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양 성분을 분리해 인체에 더 효과적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농약과 제초제를 썼다면 불가능했을 발효녹차 ‘다희연 녹차발효액’은 이렇게 탄생했다.

“다희연의 최고 자랑은 자연과 자유입니다. 번잡한 관광에 찌들었다가도 다희연에 오시면 신기하게도 표정이 환해지시거든요.” 김충원 대리(31)는 자연이 자유로울 때 비로소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고 말했다.

제주=최수묵 기자 mook@donga.com  
▼ “차를 마실 땐 사랑과 행복을 생각하세요” ▼

■ 다희연 박영순 회장의 茶예찬


다희연의 박영순 회장은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약대를 나온 뒤 한의학을 다시 공부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온누리약국체인을 설립해 국내 최대 약국체인으로 키운 최고경영자(CEO)다. 그러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2004년 제주에서 차밭을 일구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한약재에는 각각 수많은 성분이 있는데, 여러 약재를 섞어 처방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죠. 그런데 녹차만은 매우 특별한 성분을 가득 함유하고 있는 거예요. ‘나홀로’도 충분히 약이 되는 유일한 식물인 셈이지요. 바로 카테킨이라는 건데, 잎 100g당 10∼20g이나 들어 있어요. 동서고금을 통 틀어 이렇게 많은 카테킨을 함유한 식물은 없습니다.”

녹차는 동맥경화를 예방 치료하는 카테킨뿐 아니라 심신 회복에 도움을 주는 테아닌 성분까지 갖고 있다. 스트레스를 이완하는 이 특유의 성분 때문에 녹차를 마실 때는 정갈한 마음으로 다도를 해야 한다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요즘엔 수십만 원짜리 다구를 놓고 절차도 복잡하게 차를 마시는데, 그건 차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에요. 차를 마실 때 가장 중요한 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타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박 회장은 차를 세 번에 나눠 마신다고 했다. 자연에 한 번, 앞에 있는 사람에게 한 번,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한 번씩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차밭을 일군 것은 결국 남편인 주영돈 회장의 유지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갈수록 세상이 이해타산과 이기주의로 치닫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고인이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농약이나 비료를 썼겠지요. 그러나 차다운 차,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주는 진정한 녹차를 만들기 위해 그런 유혹들을 뿌리쳤어요.”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의 용암동굴계에 위치한 다희연은 당근과 생선으로 액비를 만들고 지하암반수를 육각수로 만들어 쓰는 정성 덕에 10월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유기농대회에서 공식 견학코스로 선정됐다. 그녀의 꿈은 한국 전통 녹차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것이다.

제주=최수묵 기자 mook@donga.com  
▼ 거문오름이 빚은 동굴의 다원 ‘茶談’ ▼



거문오름이 토해낸 용암은 윗밤오름에 부닥친 뒤 동북쪽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진한 용암이 앞서 나간 묽은 용암 속을 파고들면서 아름다운 용암동굴을 만들고 기괴한 협곡과 삶의 터전인 곶자왈을 형성했다. 그러나 세계자연유산인 이 거문오름의 용암 흔적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옷깃만 스쳐도 석주 등이 훼손되기 때문에 만장굴을 제외한 대부분이 출입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희연에는 이 거문오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차밭을 만들 때 발견한 2개의 동굴이 화산분출 과정에서 형성된 지질과 식생을 모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희연은 이 동굴을 훼손하지 않고 다원으로 만들어 원시의 자연 속에서 녹차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 규정상 60m 이상의 동굴은 자연보존지역이지만 다희원의 ‘다담’ 동굴은 40m여서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거문오름이 만들어낸 용암협곡은 1년에 한 번 한 달간만 개방되는데 그 코스도 거문오름∼윗밤오름∼다희연으로 이어진다.

제주=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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