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는 도서 도착과 이후 일정에 대한 문의가 밀려들었다. ‘145년 만의 귀향’ ‘약탈문화재 반환의 새로운 역사’와 같은 표현들이 쏟아졌다. “왜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아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모두 들떠 있는 건 분명했다. 4월 14일 1차분이 반환된 데 이어 4월 29일, 5월 12일 차례로 2, 3차분이 돌아왔기에 들뜬 건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속은 바싹바싹 탔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저쪽에서 무슨 트집이라도 잡는다면….’ 그동안 하루하루가 조심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실무를 맡았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오영찬 학예연구관(42). 그는 그날도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준비와 걱정으로 하루 일과가 휙 지나갔다. 오후 7시, 오 연구관은 프랑스로 국제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혹시 별일은 없을까.’ 다시 시계를 보았다. 프랑스 시간으로는 낮 12시.
“여보세요.”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연구관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방금 상자가 잘 올라갔습니다. 이제 비행기가 뜨기만 하면 됩니다.”
마지막 4차분 73책이 파리 드골공항 대한항공 화물기에 무사히 적재됐다는 소식이었다. “휴.” 그는 안도의 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정말로 돌아오는구나.’
1866년 프랑스군에 약탈당한 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145년 동안 보관해온 외규장각 도서. 그 도서들이 3차에 걸쳐 들어온 마당에 4차분을 놓고 웬 걱정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 연구관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두 달 전인 3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 환수 협정서를 체결할 때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분위기가 냉랭했습니다. 프랑스국립도서관과 관계없이 양국 정상이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도서관 측은 돌려주기 싫어했습니다. 분위기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죠. 협정서를 체결하고서 사진 촬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돌발 변수라도 터진다면 곧바로 돌려주지 않겠다고 나설 것 같았어요.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측에서 뭔가 구실을 붙여 언제라도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이었다.
그렇기에 5월 26일 마지막 4차분이 비행기에 실리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계속돼 온 긴장이 눈 녹듯 풀리던 그날 5월 26일 저녁, 퇴근길의 경쾌한 발걸음을 오 연구관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그는 마음이 다시 편치 않아졌다. 의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줄어든 것 같기 때문이다.
“비록 대여 형식이지만 우리가 일단 가져왔으니 프랑스가 다시 가져갈 수는 없겠죠. 그러나 보관 장소만 옮겨왔다고 우리 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진정으로 우리 것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일이 연구와 활용이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가져와야 된다고 하더니 막상 가져오고 나니 그다지 연구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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