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손예진에 로코 흥행수표?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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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2일 1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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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 주연 영화 ‘오싹한 연애’의 한 장면.
손예진 주연 영화 ‘오싹한 연애’의 한 장면.

배우 손예진 신작 '오싹한 연애'가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리고 그 공은 대부분 손예진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 여왕'의 복귀라는 것이다.

티브이데일리 19일자 기사 ''오싹한 연애', 손예진 효과? 로코 중 유일 200만 돌파'는 "1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오싹한 연애'는 지난 18일 11만 5055명을 동원, 누적관객 202만 8187명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로써 '오싹한 연애'는 올해 개봉된 로맨틱 코메디 중 유일하게 200만을 돌파한 영화가 됐다. 올해 개봉된 로맨틱 코메디 영화 '너는 펫'과 '티끌모아 로맨스'가 60만 관객조차 모으지 못한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맥스무비 19일자 기사 ''오싹한 연애' 손예진 주연 로맨틱 코미디 4연속 200만 돌파' 역시 "'오싹한 연애'가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손예진은 '첫사랑사수궐기대회'를 시작으로 '작업의 정석' '아내가 결혼했다' 등 자신이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모두 200만 관객을 동원시키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손예진 효과'에 주목했다.

그러나 위 두 기사는 각각 사실 면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 먼저 티브이데일리 기사에서 "'오싹한 연애'는 올해 개봉된 로맨틱 코메디 중 유일하게 200만을 돌파한 영화가 됐다"는 부분은 지난 3월31일 개봉해 260만2270명을 동원한 '위험한 상견례'를 누락시킨 설명이다.

맥스무비 기사도 "손예진은 '첫사랑사수궐기대회'를 시작으로 '작업의 정석' '아내가 결혼했다' 등 자신이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모두 200만 관객을 동원시키는 대기록을 세웠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2008년 개봉한 '아내가 결혼했다'의 공식 최종관객집계는 181만8497명이다. 그조차도 꽤나 고전해서 얻어낸 결과다.

● 손예진=로맨틱 코미디 흥행보증수표, 과연?

손예진 주연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포스터.
손예진 주연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포스터.

사소한 부분 같지만 이 같은 사실 지적이 중요한 까닭이 있다. 사실을 바로잡고 보면 위 기사들이 전제로 제시한 '손예진=로맨틱 코미디 흥행보증수표'라는 점에 쉽사리 이의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일단 '아내가 결혼했다'를 선상에서 빼버리면 사실상 손예진의 마지막 200만 돌파 로맨틱 코미디는 벌써 6년 전이 된다. 특정 장르에 강하다는 식 연장성을 주장하기 힘들어진다. 더군다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경우 손예진 티켓파워가 발휘됐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 직전까지 손예진은 '연애소설' '클래식' 등으로 병약한 미소녀 이미지를 고수했었다. 갑작스런 이미지 변신은 어떤 의미로건 티켓파워로 직결되진 못한다. 당시 손예진보다 티켓파워가 강했던 차태현에 공이 돌아가야 옳다.

그렇게 놓고 보면 손예진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 내에서 '작업의 정석'과 '오싹한 연애' 두 편의 성공에만 공을 가져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면 '손예진 효과'를 주장하기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는 '오싹한 연애' 흥행구도로도 상당부분 입증된다. '오싹한 연애'는 개봉 첫날 5만8983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바로 직전 손예진 로맨틱 코미디 '아내가 결혼했다'의 9만7242명, 그 전 '작업의 정석'의 6만639명보다 꽤나 떨어지는 수치였다.

심지어 범죄스릴러 '무방비도시'의 8만1891명보다도 떨어진다. 물론 총 주말 관객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영화흥행에 있어 스타파워는 개봉초반 발동되는 것이다. 이후 뒷심은 입소문 등 실질 대중 반응에 따른다. '손예진 로맨틱 코미디'에 대중의 신뢰도가 있었다면 눈에 띄는 초반 강세가 이뤄졌어야 옳다.

그런데 '오싹한 연애'는 첫 주보다 2주차부터가 더 잘 됐다. 엄밀한 흥행분석도 그렇지만 일반대중 인식 상으로도 '손예진=로맨틱 코미디 흥행보증수표'란 공식 따윈 있지도 않았다는 방증이다.

● '로맨틱 코미디 흥행보증수표'라는 건 없다

손예진 주연 영화 ‘오싹한 연애’의 한 장면.
손예진 주연 영화 ‘오싹한 연애’의 한 장면.

그런데 여기서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비단 손예진뿐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란 장르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도 흥행보증수표 소릴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각종 지표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결론은 더욱 명확해진다.

당장 올해 최대 이변으로 꼽히는 김하늘 주연 '너는 펫'의 대실패만 해도 그렇다. 현재 '너는 펫'은 100만은커녕 60만 관객도 채 못 채울 처지다. 물론 공동주연 장근석이 일정부분 '느끼한' 이미지란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김하늘은 2년 전만 해도 로맨스 요소가 크게 가미된 액션 코미디 '7급공무원'으로 407만8293명을 동원했던 배우다. 그게 최고기록도 아니고, 그 위로 2003년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480만9871명 동원이 또 있다.

최악의 경우에도 김하늘은 언제나 100만 관객은 돌파해줬다. 심지어 자기 장기가 아닌 스릴러 장르에서도 지난여름 '블라인드'로 235만9747명을 동원한 바 있다.

물론 어느 장르건 배우신뢰도가 흥행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편차가 큰 장르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 장르에서 큰 성공을 거둔 스타급 배우가 같은 장르에서 전작으로부터 6분의 1, 7분의 1씩 관객 동원률이 뚝뚝 떨어진다는 건 로맨틱 코미디 장르 밖에선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시장규모가 작은 한국 실정에선 그런 롤러코스터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한국 시장만의 상황만이 아니다. 세계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에서도 유독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만큼은 이런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10여년 넘게 로맨틱 코미디 여왕이란 소릴 들었던 미국 여배우 멕 라이언만 해도 그렇다. 1989년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세계의 연인이 된 이후로도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 성적은 천국과 지옥을 계속 오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톰 행크스와 커플로 나온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유브 갓 메일' 두 편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필적할 만한 성공을 거뒀다. 그 외 '볼케이노' '키스의 전주곡' 'I.Q.' '프렌치 키스' '애딕티드 러브' '케이트 앤 레오폴드' 등은 실망스럽거나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 로맨틱 코미디는 배우 아닌 콘셉트를 파는 장르

이쯤부턴 로맨틱 코미디의 본질부터 다시 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는 흥행보증수표란 호칭이 상징하는 특정배우들 대중신뢰도에 의존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콘셉트주의, 소재주의에 100% 기대 판매되는 대표적 장르다.

심하게 말하자면, 대중은 로맨틱 코미디에 누가 나오든지 상관도 안 한다. 그냥 대중혐오도 높은 배우만 아니면 된다. 나머지는 전부 영화의 콘셉트가 얼마나 눈길을 끌어내느냐에 달려있다.

당장 올해만 해도 그렇다. 로맨틱 코미디 강자 김하늘의 '너는 펫' 대실패와 대조적으로, 송새벽의 첫 주연영화이자 이시영의 두 번째 주연영화였던 '위험한 상견례'는 무려 260만2270명을 동원하는 쾌거를 거뒀다.

둘 다 티켓파워 면에선 전혀 효과를 내본 적 없는 배우들이다. 배우들에 대한 대중신뢰도 따위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영호남 갈등이란 민감한 컨셉트 하나가 팔린 결과다.

661만9498명을 동원하며 아직까지도 로맨틱 코미디 사상 최고흥행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미녀는 괴로워' 역시 김아중의 첫 주연영화였고, 주진모의 실질적 첫 히트작이었다. 그러나 성형수술을 통한 팔자 펴기 콘셉트 하나로 승부해 대성공을 거뒀다.

로맨틱 코미디 사상 역대 2위 흥행작 '엽기적인 그녀'마저도 그렇다. 이전까지 전지현은 실패작 '화이트 발렌타인'과 가까스로 중박이나 될까 말까한 '시월애' 단 두 편만을 내놓은 배우였다.

그리고 차태현은 아예 '엽기적인 그녀'가 영화데뷔였다. 역시 당시 사회문화현상으로 부각되던 '강한 여자-부드러운 남자' 컨셉트를 담아내, 그 컨셉트 하나로 톡톡히 효과를 본 경우다.

나아가 '가문의 영광' 이전까지 김정은이 과연 영화계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동갑내기 과외하기' 이전까지 김하늘은 어땠는지, 그리고 '색즉시공' 이전의 하지원, '어린 신부' 이전의 문근영, '시라노; 연애조작단' 이전의 이민정을 생각해보면 답은 더욱 분명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로맨틱 코미디는 '스타가 나오는 장르'가 아니라 '스타를 탄생시키는 장르'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영화를 파는 건 컨셉트고, 컨셉트가 먹혀 들어가면 출연한 배우, 거의 신인급에 가까운 배우들이 비로소 스타로 등극하는 구조다.

컨셉트만 잘 잡으면 현영, 박진희, 김선아처럼 검증된 적 없는 배우들도 얼마든지 중박 이상을 내주는 장르다. 반면 컨셉트가 틀리면 김하늘도 손예진도 멕 라이언도 쪽박을 쓰고 마는 장르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흥행보증수표란 건 세상에 없다. 만약 있다면, 매번 콘셉트를 잘 고르는 배우가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있을 뿐이다.

● 로맨틱 코미디는 가장 효율적인 저예산 상업 장르

손예진 주연 영화 ‘작업의 정석’.
손예진 주연 영화 ‘작업의 정석’.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영화산업과 스타산업에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기능은 더 명확해진다. 영화산업 내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가장 효율적인 저예산 상업 장르다. 애초 제작규모 상으로도 얼마든지 축소조절이 가능할뿐더러, 스타 캐스팅조차 필요 없다.

될성부른 신인만 잘 고르면 되는 일이다. 나머지는 모조리 컨셉트 승부다. 아이디어가 자본을 능가해 200만 이상을 칠 수 있는 건 현 시점 로맨틱 코미디밖에 없다.

한편 스타산업으로 놓고 봤을 때도 로맨틱 코미디는 독특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일단 아직 대중인지도가 미약한 20대 신인들이더라도 로맨틱 코미디란 장르 내에선 얼마든지 메이저급으로 활약할 수 있으니, 사실상 영화판 '슈퍼스타K' 기능을 할 수 있다.

20대를 TV에서 인지도 쌓으며 보내다 30대 즈음해서야 영화 주연급으로 캐스팅되는 고질적 커리어 물리기를 깰 수 있다. 한 마디로, 20대 신인의 급발진 격 런칭용으로 그만이란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이미 모멘텀을 놓쳐 흥행전선에서 물러난 '전직스타'들 커리어를 부활시켜줄 수 있는 것도 로맨틱 코미디밖에 없다. 많은 의미에서 손예진과 '오싹한 연애' 관계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공포와 로맨틱 코미디의 하이브리드라는 눈길 끄는 컨셉트를 통해 빛이 바래가던 손예진을 다시 대중 앞으로 불러내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로맨틱 코미디는 원로배우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를 놓고서도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통해 163만9004명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영화산업과 스타산업 간 서로 목마른 부분, 아쉬운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일종의 윈윈-가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로맨틱 코미디 여왕', '로맨틱 코미디 흥행보증수표' 여배우를 지칭코자 한다면, 최소 2편 이상의 영화를 200만 돌파로 이끈 배우들 대상으로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7급공무원'을 액션 코미디로 분류했을 때 김하늘은 여기서 빠진다.

그럼 단 3명만이 남는다. 먼저 '엽기적인 그녀'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전지현이다. 현재는 흥행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황이다. 그 뒤 나타난 게 바로 손예진이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작업의 정석' '오싹한 연애'까지 3편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신진 '로맨틱 코미디 여왕'은? 예상 밖으로 최강희가 여기 들어가게 된다. '달콤, 살벌한 연인'과 '쩨쩨한 로맨스'가 각각 228만6745명, 204만8380명씩을 모았다. 그런데 최강희는 지금껏 온전한 주연급 영화출연작이 이 두 편 이외에 2009년작 '애자' 단 한편뿐인 배우다. 대중신뢰도고 뭐고 나올 단계 자체가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 성공이 절대 출연배우 지명도나 인기도와 정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방증하는 또 다른 사례다. 그러니 지금부턴 머리와 센스만 있으면 얼마든지 흥행시킬 수 있는 이 효자장르를 놓고 어떻게 이용해야할지를 고민해야봐야 할 때란 얘기다. 괜히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로맨틱 코미디 흥행보증수표' 따위나 읊지 말고 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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