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야이며 음력으론 11월 30일, 24절기로 따지면 동지(冬至) 이틀 후다.
이 세 가지 중 식물을 기르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24절기일 것이다. 24절기는 태양이 하늘 위 황도(黃道) 상의 24개 지점을 지나는 시기를 말하며, 계절의 변화를 반영한다. 절기의 변화는 특히 낮의 길이에 따라 생장과 휴식(또는 사멸)을 되풀이하는 온대지방 식물에게 매우 중요하며, 옛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지표였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요즘부터 낮아지기 시작한 온도는 소한(小寒·양력 1월 5일 무렵)과 대한(大寒·양력 1월 20일 무렵) 사이에 최저점에 이른다. 온대지방의 식물들은 이때 대부분 성장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렇게 추운 계절에도 아름다운 열매로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식물들이 있다.
한겨울 아름다운 열매를 보여주는 식물 중 화분에 기를 수 있는 것으로는 우리나라 남부 해안지방과 제주도에 자생하는 자금우(사진), 백량금, 산호수 3총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친척 사이로 모두 늘푸른나무다. 자금우와 산호수는 키가 작고, 백량금은 1m까지 자란다. 이들의 열매는 가을부터 붉게 물들며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 따라서 실내에서 기르면 겨울 내내 붉은 열매를 감상할 수 있다. 사실 이 탐스럽고 화려한 열매는 새들을 유인해 씨앗을 퍼뜨리려는 식물의 전략에서 나왔다.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건 아니다. 사람은 식물의 생존 방식 덕에 ‘어부지리’를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겨울철 화분이나 정원에서 열매를 보여주는 나무로는 좀작살나무와 호랑가시나무, 피라칸타가 있다. 좀작살나무에는 연보라색 구슬 같은 작은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수북하게 달려 멋지기 이를 데 없다. 늘푸른나무인 호랑가시나무와 피라칸타의 열매는 붉은색이다.
정원에 심는 나무 중에서는 딱총나무, 팥배나무, 마가목, 산사나무, 산수유, 감나무 등의 열매가 가을과 겨울에 걸쳐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이런 나무 열매들은 사람에게는 약으로 이용되고 야생 조류에게는 귀중한 양식이 된다.
남부 해안이나 제주도의 산야에서는 먼나무와 아왜나무, 남천의 붉은 열매가 우리를 유혹한다. 암수딴그루인 먼나무에 암나무 가지접을 붙여 심어놓은(그래서 뿌리는 수나무라도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림) 경남 남해나 제주도의 가로수 길은 이맘때 가장 멋진 경관을 연출한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탐스럽게 달린 열매들은 추위에 지친 우리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준다. 열매는 그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씨앗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추운 계절에 예쁜 열매를 보여주는 여러 나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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