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토냉 아르토(1896∼1948).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배우, 그리고 초현실주의 시인인 그의 희곡은 대사나 연기뿐 아니라 조명과 음향 등의 총체적 결합으로 관객을 집단적 흥분 상태로 끌고 간다. ‘잔혹극의 창시자’라고 불리며 연극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평생 정신병에 시달리다 요양원에서 숨을 거둔다.
작품은 불행한 삶을 살았던 천재 극작가 아르토의 행적을 쫓는 경제일간지 문화부 여기자 임현준과 아르토 연구자 박동주의 궤적을 그렸다. 임현준은 특집 기사 ‘현대인의 내면 풍경-광기의 역사’를 위해 아일랜드와 프랑스를 찾아 아르토가 남긴 흔적을 찾고, 박동주의 해설을 듣는 동안 아르토의 광기 어린, 하지만 지극히 순수한 예술혼에 끌린다. 연락이 끊긴 아버지와 먼저 세상을 떠난 옛 남자친구 등으로 깊게 파인 임현준의 내재적 상처가 다른 상처 입은 영혼인 아르토의 삶과 맞닿으며 점차 치유되는 과정을 잔잔히 그려낸다.
아르토가 반 고흐의 죽음에 대해 “그가 미친 것이 아니라 미친 사회가 그를 궁지에 몰아가 결국 자살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임현준 또한 아르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아르토에 대한 이해는 바로 잔혹에 대한 오해로부터 시작한다. 아르토의 잔혹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처참한 장면 등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부서지는 에메랄드빛 순수의 파도 앞에서까지 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 그게 잔혹이다.”
연극뿐만 아니라 미술, 문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그에 얽힌 뒷얘기들을 양념처럼 집어넣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프랑스 극작가 장 주네, 한국 연출가 이윤택 등의 작품이 공연되는 서울 대학로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점도 눈에 띈다. “우리는 거짓으로 이루어진 환경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다”를 비롯해 아르토가 남긴 명문들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임현준의 현재와 과거, 박동주의 번역서, 아르토의 이야기 등이 매끄럽게 전환되지는 않는다. 종종 눈에 띄는 에세이 같은 느슨한 서술들은 소설적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