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10년 고생길 달게 걸었다, 이 땅의 나무 사랑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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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4일 03시 00분


◇ 한국의 나무/김진석 김태영 지음/688쪽·4만 원·돌베개

10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나무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 나무도감을 완성한 김태영 씨(인물 사진 왼쪽)와 김진석 씨. (오른쪽)김태영 씨와 김진석 씨가 세계 최초로 발견해 이름을 붙인 ‘바위종덩굴’.김태영 김진석 씨, 돌베개 제공
10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나무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 나무도감을 완성한 김태영 씨(인물 사진 왼쪽)와 김진석 씨. (오른쪽)김태영 씨와 김진석 씨가 세계 최초로 발견해 이름을 붙인 ‘바위종덩굴’.김태영 김진석 씨, 돌베개 제공
2005년 6월 오후 보슬비가 내리는 강원 평창군 발왕산. 희귀종 낙엽 관목인 흰인가목을 찾아 사진을 찍던 김진석 씨(36)는 정상의 구름 속에서 홀로 길을 잃고 말았다. 해는 져가고 빗줄기는 점점 거칠어졌다. 초조한 마음을 다잡고 일단 능선을 따라 걸었다. 폭우 속에서 도로를 찾아 걷고 또 걸었으나 하필 지갑을 차에 놔두고 오는 바람에 택시를 잡을 돈이 없었다.

비에 쫄딱 젖은 채 5시간을 헤매다 오후 8시쯤 정선에 이르러 승합차가 주차된 민가를 발견하고 차를 얻어 타기 위해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영문도 모르는 집주인이 수건을 내밀며 건넨 첫마디는 “밥은 먹었느냐”였다. 심마니였던 집주인은 산삼국물에 국수를 말아주고 김 씨가 차를 세워둔 평창까지 1시간 거리를 태워줬다.

나무를 관찰하겠다고 그렇게 10년간 전국을 돌며 모은 사진들이 나무도감으로 나왔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식물자원과 연구사인 김진석 씨와 야생식물을 관찰·조사하는 김태영 씨(46)가 함께 출간한 ‘한국의 나무’(돌베개)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나무 650여 종을 저자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 5000여 장과 함께 소개했다.

두 사람이 10년간 찍은 나무 사진을 합치면 14만5000여 장에 이른다. 연간 150일은 나무를 찾아다니며 보냈다. 식물분류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마친 김진석 씨는 “학부 시절부터 마땅한 국내 자연도감이 없어 직접 책을 쓰겠다는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통번역 일을 하며 암벽등반에 빠졌던 김태영 씨는 “15년 전부터 자연생태에 관심을 갖고 독학해왔는데 국내 자연도감에 오류가 많아 일본 책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5년 전 지인이 식물에 미친 두 사람을 이어줘 함께 설악산에 가면서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서로 식물을 보는 관점이 통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됐고 각각 책을 쓰려고 모으던 자료를 합쳐 공동작업을 했다.

나무 사진은 자생지에서 직접 촬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수목원이나 식물원의 나무들은 인위적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는 느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꼿꼿한 원칙 때문에 고생길이 열렸다.

“한국에 자생한다는 자료가 전혀 없던 송양나무를 한 섬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전남 여수에서 배 타고 몇 시간 들어가야 하는 곳이죠.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시기를 모르니 10번 찾아간 끝에 꽃을 보고 사진을 건졌죠.”(김태영 씨) 그는 송양나무의 정확한 자생지가 알려지면 사람들이 몰려 자연이 파괴될 우려가 있다며 지명은 밝히지 않았다.

이처럼 국내외 여러 자료들을 비교한 뒤 자생지를 찾아 일일이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오류를 바로잡고 신종을 발견하기도 했다.

“강원 삼척의 덕항산에서 석회암 바위지대에 자생하는 신종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어요. 해외 문헌에도 없어 직접 ‘바위종덩굴’이라고 이름 붙였죠.”(김진석 씨)

‘하늘의 신선이 먹는 과일’이라는 뜻의 천선과나무는 국내의 모든 책에 개화기가 5월이라고 돼 있지만 이 책에는 7, 8월이라고 썼다. “기존 책들이 일본 남쪽지방의 자료를 인용한 것을 국내에서 확인하지도 않고 재인용해 그런 오류가 있었던 거죠. 천선과나무의 꽃은 꽃주머니 안에 숨어 있어서 일일이 까봐야 해요. 5월부터 8월까지 매달 자생지를 찾아 꽃주머니를 들춰 보며 정확한 개화 시기를 밝혔죠.”(김태영 씨)

두 사람은 이렇게 발품 팔아 꾸민 책에 대해 “나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쉽게 들춰 볼 수 있는 책”이라며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고 꾸밈없는 자신감을 표현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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