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남미대륙을 떠돌던 전설적 시체 두 구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에비타’로 알려진 여인, 에바 페론(1919∼1952)과 ‘체’란 애칭으로 불렸던 사나이, 에르네스토 게바라(1928∼1967)다. 33세로 숨을 거둔 에비타의 시체는 복잡한 국내외 정세로 인해 24년이나 국내외를 떠돌다 1976년에야 고국에 안장됐다. 39세에 볼리비아에서 총살된 체의 시체는 30년간 행방이 묘연하다가 1997년에야 발굴돼 그의 혁명의 고향, 쿠바에 안장됐다.
1978년 초연된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의 뮤지컬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극의 해설가로 체를 등장시켰다. 연출가 해럴드 프린스의 아이디어였다고 하는데 이게 이 작품의 롱런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 부정부패 척결과 빈민구제라는 윤리적 호소로 정치적 위기상황을 돌파하려 했던 포퓰리스트와, 무장투쟁을 통한 체제 전복을 꿈꾼 혁명가라는 상극의 충돌을 통해 자칫 에비타 찬가로만 끝날 수 있는 원작의 균형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2006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어 공연에 들어간 ‘에비타’(이지나 연출)는 이 둘의 대립을 더욱 부각했다. 이 뮤지컬은 1978년 원판과 2006년 개정판이 있는데 이번 공연은 이 두 버전을 뒤섞으면서 체의 비중을 늘리고 에비타의 남편 후안 페론의 비중을 줄였다. 개정판에 들어있던 에비타와 후안이 함께 부르는 ‘유 머스트 러브 미’가 빠진 대신 제일 첫 장면부터 에비타를 등장시키고 마지막 장면은 에비타와 체의 영혼이 가방을 들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으로 바꿨다.
대중에겐 낯선 아르헨티나 현대사는 후경(後景)으로 삼고, 대중에게 친숙한 두 명의 스타를 전경(前景)에 내세운 전략이다. 대저택 발코니 장면 등 아르헨티나 풍광을 담은 사실적 무대를 높은 이동가로대나 계단을 활용해 현대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무대로 바꾼 것도, 그 대신 에비타 또는 체를 향해 사방팔방에서 입체조명을 계속 때려댄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원작이 유지하려던 균형감을 상실한 채 역사 속에 살아 숨쉬던 인물을 너무 정형화해 버린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에비타는 너무 ‘마돈나’(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대중스타 마돈나)처럼 그려졌고, 게바라는 너무 ‘까도남’(군복 입은 덥수룩한 게릴라가 아니라 슈트를 걸친 도회인)처럼 그려졌다.
대중적 상징 조작에 능했던 에비타로선 회심의 미소를 지을 일이겠지만 자신이 타도하려던 자본주의 체제에서마저 철저히 상품화돼 버린 게바라로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탕녀와 성녀를 넘나드는 에비타 역으로 변신에 변심을 거듭하는 정선아와 리사의 노래와 연기가 게바라 역의 이지훈과 임병근을 압도한다. 에비타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구체적 현실을 휘발시킨 채 그저 이미지와 스타일로만 떠도는 두 유령을 쌍두마로 내세운 한판의 서커스 쇼, 에비타 하면 떠오르는 포퓰리즘 향기가 물씬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내용뿐 아니라 형식까지 더욱 에비타다운 뮤지컬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논쟁에 휩싸여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반영한 한국적 뮤지컬이라고 해야 할까. 산타 에비타(거룩한 에비타)가 ‘돈 크라이 포 미…’의 선율을 타고 우리에게 선사하는 역설적 선물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내년 1월 29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3만∼13만 원.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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