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음식이 둘 있다. 하나는 포항 과메기이고 다른 하나는 전남의 매생이 칼국수다. 파래와 비슷한 녹조류 식물인 매생이는 청정해역에서 자라는데 주로 겨울에 채취하니 요즘이 제철이다. 마늘과 굴을 넣고 끓여 참기름을 친 매생이국과 매생이 칼국수는 맛도 좋지만 소화가 잘되고 숙취 해소에도 효과가 있어 참살이 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다.
하지만 자칫 잘못 먹으면 입천장을 데기 십상이다. 펄펄 끓여도 뜨거운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 실보다 가늘고 촘촘한 매생이의 올 속으로 열기가 모두 숨기 때문이니 멋모르고 덥석 물었다가는 낭패를 본다. 그래서 예전 전남 바닷가 마을에서는 매생이로 끓인 국을 ‘미운 사위 국’이라고 불렀다. 장모가 곱게 키워 시집보낸 딸자식에게 소홀한 사위를 은근히 골탕 먹이기에 안성맞춤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을 델 정도로 허겁지겁 먹는 음식이니 뒤집어 보면 매생이가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매생이는 전남 해안지방에서만 나는 특산물로 유명해서 임금님께 진상품으로 바쳤다. 조선의 각종 지리지에는 전남 해안의 토산품으로 매생이를 빼놓지 않았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 전라도 토산물로 기록돼 있다. 중종 때 새로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더 자세하게 전라도 장흥 나주 진도 강진 해남 흥양(고흥) 등의 특산물로 매생이를 꼽았다. 특이한 것은 경상도나 전북 해안의 특산물로는 매생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제한된 지역의 식품이었으니 많은 사람이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매생이 맛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 맛이 별미였던 모양이다. 선조 때 호남의 유림을 대표했던 유희춘은 ‘미암일기(眉巖日記)’에 해남의 수령이 매생이를 보내주었다며 좋아하는 내용을 실었다.
성종 때의 문인 성현이 쓴 ‘용재총화(용齋叢話)’에도 매생이 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매생이로 친구를 골탕 먹였다는 것이다. 성현의 친구 중에 김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절에서 책을 읽다 밥상에 올라온 낯선 반찬을 먹어보고는 그 맛에 반해 스님에게 이름을 물었다. 새로운 반찬이 매생이라는 것을 안 김간은 어느 날 성현의 집에 놀러 갔다가 매생이 구이를 먹어 보았느냐며 천하의 진미라고 자랑을 했다. 그러자 성현이 매생이는 임금님이 잡수시는 상에만 올라가는 반찬으로 궁궐 밖 사람들은 쉽게 맛볼 수 없는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친구를 위해 기꺼이 구해다 주겠다며 몰래 하인을 시켜 숭례문 밖에 있는 연못에서 이끼를 떠오도록 했다. 그러고는 술상을 차려 내오면서 성현 자신의 앞에는 진짜 매생이를 놓고 친구 앞에는 연못에서 건진 이끼를 차려놓아 골탕을 먹였다는 것이다. 용재총화의 내용으로 보면 전남 일부 해안지방에서만 나는 특산물이었기 때문에 옛날 한양에서는 무척 귀한 대접을 받았다.
요즘은 곳곳에 매생이 칼국수집이 생겼으니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데 겨울이 제철인 매생이 칼국수를 먹으며 옛날 임금님이 드시던 별미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더 맛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장모님이 매생이 칼국수 먹자고 말씀하시기 전에 미리 올 한 해 부인에게 소홀히 한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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