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1970, 80년대 한국 영화의 단골 소재다. 일부종사의 한을 짊어진 젊은 과부가 뒤늦게 사랑에 눈을 뜬 뒤 몸부림친다. 양반댁 딸과 그 머슴네 아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도 들어 있다. 법도를 강조하는 시어미와 자유를 꿈꾸는 며느리 사이의 갈등도 빠지지 않는다.
극작가 하유상 씨가 1972년 발표한 원작 희곡은 2년 뒤 김기덕 감독이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영화는 며느리의 비극적 사랑과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 연극은 시어머니-며느리-손녀딸 여인 3대의 이야기를 골고루 훑는다.
시어머니(이엘리)는 전형적 조선 여인이다. 젊은 날 과부가 됐지만 ‘여자의 일생은 꽃가마 타고 시집오는 데서 시작해 꽃상여 타고 저승 가는 것으로 끝난다’는 믿음으로 평생 수절한 여인이다. 금지옥엽 같은 외아들은 일본군 군속으로 남양군도에 끌려갔다가 병사한다.
졸지에 과부가 된 며느리(유나영)는 광복 후 남편의 친구 민수(이도엽)로부터 진실을 전해 듣는다. 남편은 병사한 게 아니라 원주민 여인을 사랑해 연적인 일본군 장교를 쏴 죽인 죄로 사형당한 것이다. 그 죄의식 때문일까. 남편은 아내에게 ‘어머니처럼 부자연스러운 수절로 자신을 학대할 필요가 없다’는 유서를 남긴다. 며느리는 결국 꽃상여 타기를 포기하고 민수와 함께 떠난다. 두 딸을 남겨둔 채.
14년의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 손에서 자란 손녀딸 숙희(강영해)가 시집갈 나이가 된다. 숙희는 소꿉놀이 친구인 머슴집 아들 만득(한강우)과 결혼하려 한다. 하지만 양가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치자 음독자살을 한다. 만득은 논문서를 받기로 하고 영혼결혼식을 올린 뒤 문서를 찢고 숙희를 따라 죽는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사회가 겪어야 했던 홍역이다. 하지만 너무도 흔한 돌림병이었기에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연출가 임형택 씨는 이를 환상적 리얼리즘에 가까운 스타일의 차별화로 돌파한다.
핵심은 춤과 노래다. 오케스트라피트에 자리 잡은 양악과 국악 혼성 7인조 악단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남미 풍의 흥겨운 리듬으로 무장했다. 배우들은 물고기 떼처럼 유영하면서 인위적 법도의 그물망에 붙잡히지 않는 삶의 약동하는 에너지를 춤으로 표현한다. 민수가 남양군도 원주민에게서 배워왔다는 이국적인 ‘상어춤’이다. 여기에 우리 옛 동요와 민요, 군가와 만주 가요까지 뒤섞여 신파조에 가까운 원작과 또 다른 극적 리듬감을 빚어낸다.
일종의 스크린 역할을 수행하는 반투명 대형 거울에 투사되는 몽환적 영상과 무대의 투명한 유리병풍 뒤에서 펼쳐지는 무언의 몸짓 연기 역시 원작을 신파조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 결과 숙희와 만득을 꽃상여에 태워 보내는 장례를 위해 모인 여인 3대가 함께 춤과 노래를 펼치는 화해의 드라마도 가능해진다. 꽃가마(삶)와 꽃상여(죽음)가 하나로 화합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여인 3대의 캐릭터가 완고한 시어머니, 반항적 며느리, 자유분방한 손녀딸이란 도식적 구별을 뛰어넘는 개성과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지녀야 한다. 그런 개성과 공통분모가 극 속에 충분히 녹아 있어야만 마지막 불꽃놀이가 화려한 법이니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한국공연예술센터의 ‘2011 우리 시대의 연극’ 선정작. 8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만∼7만 원. 02-3668-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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