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언론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서 얼음이 천지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는 현상이 관측됐다” “산비둘기들이 조의식장 마당에서 30분 동안 슬피 울었다”며 김 위원장을 우상화하고 있다. 첨단의 시대에 북한 주민들이 이런 비논리적 선동을 비판이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심리학적으로 가능한가. (ID: secular**) 》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대학졸업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대학동창 A의 얼굴이 떠올랐다. 몇 년 전 A가 나를 꼭 한 번 보고 싶다면서 전화를 걸어왔으나 갑자기 집안에 큰일이 생겨 약속을 취소한 뒤로는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고 5분이 지난 뒤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 하나가 왔다. 방금 전 A가 사망했다는 부고였다. 만약 당신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혹시 당신을 정말 보고 싶었던 친구가 하늘나라로 가기 직전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잠깐 들른 것은 아닐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앨버레즈가 확률이론을 이용해 계산한 것에 따르면, 어떤 친구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고서 5분 안에 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은 미국 정도의 인구를 가진 나라에선 매일 10명이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1년이면 미국에서 약 3650명이 이런 우연에 노출된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중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우연에 의해 일어날 확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두 개의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 둘 사이에 상당한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누군가의 장례식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하늘도 이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두 개의 개별 사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은 유기체의 생존에 매우 기능적으로 작용한다.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과 비가 온다는 두 가지 사건에 관계가 있다고 추론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다음번에 먹구름을 보자마자 비가 올 것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생존에 도움을 주는 이러한 추론 경향이 필요 이상으로 강해서, 실제로는 무관한 두 개의 사건 사이에도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판단의 오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 경향 때문에 두 개의 사건을 단순히 나열해서 제시하기만 해도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두 사건을 연결해 지각하게 된다. 따라서 진위 여부를 떠나 “백두산 천지에서 얼음이 천지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는 현상이 관측됐다”는 뉴스를 “김 위원장이 사망했다”는 뉴스와 비슷한 시점에 제공함으로써, 주민들로 하여금 두 사건 간에 의미 있는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추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연히 발생한 두 사건이 실제로 관련이 있다고 믿는 정도에는 사건 속 인물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앞서 언급한 A가 대학시절 열렬히 사랑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진 연인이었다면, A와 얼굴만 알고 지냈던 사람의 경우보다 A가 하늘로 가기 전에 자신을 방문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 것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북한 언론의 뉴스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들이 김 위원장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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