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夏(하) 殷(은) 周(주)의 三代(삼대)에 지방 학교는 각각 이름이 다르고 학습 내용도 달랐다고 했다. 즉 하나라의 校(교)에서는 백성 가르치는 것을 위주로 했고, 은나라의 序(서)에서는 활쏘기 익히는 것을 위주로 했으며, 주나라의 庠(상)에서는 노인 봉양하는 것을 위주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서울에 두는 國學(국학)은 三代가 모두 學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 學을 太學(태학)이라고도 한다. 사서삼경의 ‘大學(대학)’이란 고전은 본래 태학에서 가르치는 학습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간주돼 왔다.
혹자는 하나라의 校, 은나라의 序, 주나라의 庠을 지방 학교로 보지 않고, 太學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삼대의 학교는 명칭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모두 學에 해당한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이 설도 통하므로 여기에 부기해 둔다.
실제로 삼대에 각각 지방 학교를 두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입증할 길이 없다. 그런데 맹자는 삼대에 걸쳐 지방의 학교나 서울의 국학은 교육과정이 달랐을지라도 교육의 목표는 똑같이 明人倫(명인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교육에 의해 상층의 사람이 먼저 인륜에 밝아져 인간다운 덕목을 실천한다면 하층의 피지배층도 교화돼 서로 친화하게 된다고 믿었다.
고대에는 설령 지방에 학교가 있었다고 해도 서민의 자제를 학교 기관에서 교육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明人倫은 귀족의 자제를 위한 교육의 이념이라고 보아야 하며, 그렇기에 맹자는 ‘인륜이 위에서 밝아지면’이라고 했다. 하나라의 校가 백성 가르치는 일을 위주로 했다고 말한 것도 백성들을 교화하여 인도하는 방법을 교과 내용으로 삼았다는 뜻이지, 백성들을 그 교육기관에 모아 가르쳤다는 뜻이 아니다.
맹자에 따르면 三代의 교육은 상층 계층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삼아 그들에게 지도층으로서의 덕목을 갖추게 하려고 했다. 현대의 교육은 기회 균등을 보장하므로 삼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적이다. 다만 인성교육의 방법을 본다면 현대의 교육이 삼대의 교육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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