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음료인 수정과는 아무 때나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예전에는 궁중이나 지체 높은 양반집에서도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에나 맛볼 수 있었던 고급 음료였다. 임금이 계절 따라 마시는 궁중 음료 중에서 백미로 꼽히는 것이 여름의 제호탕(醍호湯)과 겨울의 수정과였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절에는 제호탕, 새해 정월 초하루에는 수정과를 마신다고 했다. 제호탕은 매실 음료로, 단오에 임금이 내의원에 명령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얼마나 귀한 음료였던지 한 사발 얻어 마시면 벼슬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한결 같이 임금님의 은혜에 감격을 했다. 수정과 역시 이런 제호탕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음료였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고려의 궁인이 설날 곶감과 생강 끓인 물로 음료수를 만든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데 ‘수전과’라고 부르며 새해가 되면 한 그릇씩 마신다고 했으니 수정과가 궁중에서 발달한 음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별 부담 없이 마시는 음료지만 예전 일반 가정집에서는 제사 때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접대용으로 어렵게 내놓았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준비해야 할 음식 목록을 적어 놓았는데 여기에 수정과도 포함되어 있다. 다산은 손님을 맞이할 때 ‘상장(爽漿)’이라는 음료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상쾌할 상(爽)에, 마시는 즙이라는 뜻의 장(漿)이라는 한자를 썼으니 마시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는 뜻이다. 정약용은 상장이 우리말로는 수정과라고 했다.
수정과를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 그렇게 심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조선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수정과는 만만한 음료가 아니다. 지금은 생강과 계피 끓인 물에 곶감을 넣어 수정과를 만들지만 예전에는 더 다양하고 풍부한 재료로 만들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청나라에서 사신이 왔을 때 접대용으로 수정과를 준비하면서 곶감이 아닌 유자로 만든다고 했다. 곶감이나 유자 외에도 석류, 앵두, 다래 등 여러 종류의 과일로 수정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정약용도 곶감은 물론이고 배나 밤으로도 만든다고 했으니 지금의 수정과와는 개념이 많이 달랐다. 여러 재료를 넣어 국물을 낸 뒤 과일과 꿀, 설탕을 첨가해 마시는 음료수의 총칭이었다.
수정과(水正果)라는 한자의 의미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우리 전통과자나 음료 중에서 과일이 들어가는 것을 정과(正果)라고 한다. 마시는 음료수는 수정과, 꿀이나 설탕에 졸여 과자로 만들면 건정과(乾正果)다. 그렇기 때문에 수정과의 종류가 풍부했던 것인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곶감 수정과였다.
수정과가 궁중이나 양반계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은 좋은 재료를 써서 몸에 이롭고 맛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정과의 국물을 내는 주재료인 생강과 계피를 유교의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에서는 선비의 강직한 성품에 비유했다. 생강과 계피가 인삼과 같은 수준의 약재로 대접받았을 뿐만 아니라 선비의 수양에 도움이 되는 음식 재료라고 여겼으니 그런 재료를 넣어 만든 수정과를 제왕과 군자의 음료로 삼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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