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먹밥은 다양한 모양으로 앙증맞고 예쁘며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예전 주먹밥은 피란길에 먹거나, 먼 길 여행을 떠날 때 싸갖고 다니던 도시락이었다. 그러니 꽁보리밥에 소금을 뿌려 주먹으로 뭉친 밥이 전부였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난리가 났을 때는 주먹밥을 정성스럽게 싸기 힘들었겠지만 평상시 양반들은 도시락용으로 지금 못지않게 예쁘고 맛깔스러운 주먹밥을 만들었다. 엄마들이 요즘 아이 간식으로 만들어줄 때처럼 정성을 들여 갖가지 재료를 넣고 온갖 모양으로 만들어냈던 것 같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제함반법(製함飯法)이라는 글이 있다. 풀어서 말하자면 주먹밥 뭉치는 법이다. 작단(作團)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작은 경단 모양으로 빚었을 수도 있겠고 주먹밥을 한자로는 단반(團飯)이라고 표현하니 어른 주먹 크기만 했을 수도 있다.
이규경이 소개한 주먹밥 만드는 법을 보면 멥쌀로 밥을 지어 고명을 넣고 뭉치는데 고명의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른 맛을 낸다고 했다. 주먹밥의 종류가 지금 못지않게 다양했다. 우선 채소를 익혀서 현란하게 찧은 후에 밥과 함께 둥글게 빚는 주먹밥이 있다고 했다. 또 콩과 녹두, 팥의 껍질을 벗긴 후 꿀이나 사탕과 함께 끓여서 둥글게 만들기도 하고 대추나 잣가루, 꿀과 계피가루, 석이버섯 가루를 섞어 둥글게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생선살을 빻아서 즙에 담근 후 기름에 부쳐서 둥글게 빚는다고도 했으니 이것은 오히려 어묵과 비슷할 것 같다. 또 고추장에 담그거나 고추를 볶아서 둥글게 주먹밥을 빚으며 게장으로도 밥을 빚고 새우 알, 전복이나 볶은 홍합, 대하 가루로도 빚고 기름소금에 김을 구워 가루로도 빚으며 회와 겨자 장을 섞어서 주먹밥을 만들기도 하는데 접시에 담아 먹는다고 했으니 화려하고 훌륭한 주먹밥의 향연이다.
찹쌀로도 주먹밥을 만들었는데 아마 약식을 주먹밥처럼 만들었던 것 같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의 시에는 찹쌀로 주먹밥을 만들었다는 대목이 있다. “끈끈한 찹쌀밥을 둥글게 똘똘 뭉쳐서 꿀로 버무리면 빛깔이 알록달록하고 여기에 다시 대추와 밤, 잣을 곁들이면 입에 달고 맛이 한층 더 좋다”고 노래했다. 단지 피란 가거나 먼 길 떠날 때 먹는 음식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와 모양으로 빚은 고급요리였다.
주먹밥은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일본은 주먹밥을 요리로 승화시켰다고 자찬하는데 주로 삼각김밥인 오니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주먹밥에도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의 주먹밥인 삼각김밥이 삼각형으로 생긴 것은 일본 ‘고지키(古事記)’에 나오는 세 명의 신을 형상화해서 삼각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대 일본에서는 산(山)을 신격화해서 밥을 산과 같은 삼각형으로 만들어 신령을 내려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오니기리라는 말 역시 귀신을 퇴치한다는 말과 비슷하기 때문에 삼각형의 주먹밥이 부적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고 여겼다는 이야기도 있고, 역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쌀밥을 주먹으로 잡아 던져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주먹으로 밥을 잡으면 각이 생겨서 삼각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먹밥을 현란한 요리로 발전시켰고, 일본은 여기에 신화적 의미를 곁들인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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