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세 이후 새 인생을 시작하는 ‘두 인생 체제’가 도래하면서 노인들마다 중요한 가치도 변했다. ‘제1인생’엔 아쉬움이 남았더라도 ‘제2인생’에서 새로운 성공을 이룰 수도 있다. 65∼74세의 청년노인, 75∼84의 중년노인, 85세 이상의 노년노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본보 분석 결과 청년노인에겐 일이, 중년노인에겐 건강과 안정적 소득 기반이, 노년노인에겐 정서적인 고립감 극복이 가장 중요했다. 제2의 인생을 살며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는 노인 3명의 비결을 들어봤다. 》 ○ 청년노인 차갑수 씨 “제2의 인생에선 내 일을 한다”
은퇴 후 일하는 비율은 36.5%로 낮아진다. 설령 일자리를 얻어도 질이 나쁘다. 청년노인의 고민은 일자리다.
주부 차갑수 씨(67·여·경기 과천시)의 남편은 1990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가장이 됐지만 사남매가 모두 학생이라 집을 비우고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 퇴직금 3590만 원을 아껴 아이들을 키우는 게 최선이었다. 세 딸이 모두 결혼하고 막내아들까지 유학을 떠난 2004년, 차 씨는 새 삶을 결심했다.
이력서를 수십 번 고쳐 쓰면서 노인 일자리에 도전했다. 그 결과 62세가 되던 2007년, 복지관의 노인일자리사업인 ‘실버인력뱅크’를 통해 첫 일자리를 얻었다. 매주 월, 수, 금 3일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일한다. 복지관에서 글쓰기도 배웠다. 이 덕분에 지난해부터 ‘(사)한국편지가족’에도 가입해 초등학생들에게 편지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가 섭외되면 2∼4시간씩 강의하고 2만∼4만 원의 강사료를 받는다.
이렇게 해서 차 씨가 매달 버는 돈은 30만 원 내외.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을 통해 얻는 보람은 크다. 차 씨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어 재미있다. 일을 할 때마다 엔도르핀이 샘솟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뒤늦게 취업에 성공한 비결을 차 씨는 △눈높이를 낮춰라 △공부해라 △주눅 들지 마라 등 세 가지로 요약했다.
“눈높이를 낮추면 일은 어디에나 있어요. 물론 공부해야 기회가 옵니다. 주눅이 들어서도 안 됩니다. 젊은 강사들과 일할 때는 ‘난 경륜이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붙었죠.”
○ 중년노인 박병례 씨 “일단 움직여라”
중년노인은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16.4%로 노년노인보다도 낮았다. 소득이 점차 줄고 건강도 악화되는 시기라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 탓이다.
박병례 씨(77·여·서울 서초구)는 “아픈 곳이 없다. 병원에 안 간다”고 잘라 말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기운이 넘쳤다. 10년 전부터 서초양재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매일 4시간씩 운동을 한다. 등록비용은 매달 1만 원. 병원비나 약값이 한 푼도 들지 않으니 1만 원이 아깝지 않다.
“노후에 혼자 살 줄은 미처 몰랐지. 소일거리로 시작했는데 아이고, 처음에는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더라고.”
오전에는 단전호흡과 요가, 맷돌체조를 하고 오후에는 에어로빅, 댄스를 한다. 이 가운데 요가는 강사도 깜짝 놀랄 만한 실력이다. 함께 운동하는 노인 50명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한겨울에도 반팔 차림인 그는 손가락이 발끝에 닿게 몸을 구부릴 수 있다. ‘다리 찢기’도 거뜬하다. 주변 노인들이 “박 씨는 몸에 뼈가 없나 봐”라며 부러워할 정도다. 살림도 혼자 한다. 92m² 크기 집을 쓸고 닦는 것은 물론이고 빨래, 설거지 등 집안일도 문제없다. 박 씨는 “보통 내 나이면 도우미를 써서 집안일을 맡기는데 아직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라 최근 뼈엉성증(골다공증) 검사를 받아 봤다. 의사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진단했다. 운동 외에도 긍정적인 마음, 골고루 적게 먹기, 체중 유지하기가 건강 비결이라 했다.
“내가 아프면 자식이 자주 와야 하고 힘들어지잖아. 건강해야 짐이 되지 않지. 90세까지는 운동을 할 거야.”
○ 노년노인 박병용 씨 “사회적 관계를 찾아 나서라”
통계에 따르면 노년노인이 될 무렵 가까운 친척은 1.4명, 친구는 2.1명으로 청년노인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사회활동이 적다 보니 고립도 심해진다.
박병용 씨(86·서울 서초구)는 공직생활을 하다 53세에 퇴직했다. 그러나 대기업, 중기업, 소기업으로 옮겨가며 일을 한 덕분에 실제로는 80세에 은퇴했다.
80세의 나이에도 가장이 놀고 있다는 생각에 죄인이 된 듯했다. 박 씨는 “은둔을 하다 보니 외롭고 우울해졌다. 이러다간 병에 걸릴까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만 사회적 관계는 자꾸 단절돼 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봉사’와 ‘취미’를 택했다.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체면을 차리느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노래를 배우러 동네 복지관에 갔더니 90% 이상이 여성이었다.
“직장 다닐 적에는 거의 남자였는데…. 지금은 수다도 떨고 노래도 하고, 쑥스러운 게 많이 사라졌지.”
이런 변화는 부부금실에도 도움이 됐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땐 설거지를 아내와 같이 한다. 아내가 세탁기를 돌리면 빨래를 걷어서 개는 것은 그의 몫이다.
‘지니 선생’이란 봉사활동도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맨 뒤 글자를 딴 ‘지니 선생’은 어린이들에게 인성과 기초질서에 관한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 이번 크리스마스 땐 산타할아버지로 변신했다.
손자, 손녀는 명절에나 만난다. 지금은 훌쩍 컸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손자, 손녀의 옛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박 씨는 “노인들은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기운이 난다. 봉사를 통해 세대 간 소통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니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노인 봉사 프로그램인 ‘시니어코리아’ 양재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그는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 지난해 노인일자리 창출 20만개… 두드리면 열립니다 ▼ ■ 분야별 노인지원 정책
○ 일자리를 찾고 있다면
퇴직을 앞둔 직원에게 지역 내 다른 일자리를 알선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시니어직능클럽’이라 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회사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최대 8000만 원까지 지원한다.
만 55세 이상 전문직 은퇴자라면 비영리 또는 사회적 기업에 취업을 알선하는 ‘앙코르 프로젝트’를 이용할 수 있다. 기본교육과 현장실습을 마친 뒤 자신의 ‘전공’을 활용해 법률상담, 대출상담 등을 할 수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www.kordi.go.kr). 02-6007-9100
퇴직한 지 한참이 지났다면 노인일자리 사업에 도전해보자. 지난해 정부가 만든 노인일자리는 20만 개였다.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노(老)노(老) 케어’ 서비스도 그중 하나다. 건강한 노인이 아픈 노인을 돌보거나 가사일을 돕는다. 정부가 최대 20만 원까지 지원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또는 한국시니어클럽협회(www.silverpower.or.kr). 02-747-5508
○ 나도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노후소득의 기본은 국민연금이다. 소득이 없는 주부나 소득이 불규칙한 자영업자도 가입할 수 있다. 만 55세부터 미리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기노령연금,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면 수령액을 올려 받는 연기연금 등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국민연금 역사가 25년에 불과하다 보니 만 65세 가운데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30%뿐이다. 소득 하위 70%까지는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홀몸노인은 매달 최고 9만1200원, 부부는 14만5900원을 받는다.
주택연금과 농지연금도 있다. 9억 원 이하 주택을 담보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www.hf.go.kr). 1688-8114 부부가 모두 만 65세 이상이고 3만 m² 이하인 농지를 가졌다면 농지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한국농어촌공사(www.ekr.or.kr). 1577-7770
○ 오래도록 건강하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국 2500여 경로당에서 주 3회, 6개월간 요가 및 기체조 등의 운동 지도를 하고 있다. 노인복지관에도 생활체육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정서적 고립감을 극복하려면 자원봉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사회참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한민국사회봉사단은 경기와 전남 두 곳에서 총 700여 명 규모로 사회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사회봉사단(www.koreahands.org). 02-415-6579
콜센터 상담원과 자원봉사자 1만 명이 홀몸노인에게 안부전화를 거는 ‘독거노인 사랑 잇기’ 서비스도 있다. 주 2, 3회 안부전화를 걸어 말벗이 되고 자원봉사자가 직접 방문해 건강도 살핀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www.1661-2129.or.kr). 166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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