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종’은 존재할까요? 100년쯤 전 유럽인들은 식인종의 흔적을 과거에 살았던 ‘친척 인류’에게서 찾았습니다. 크로아티아의 크라피나 동굴 유적은 20세기 초에 발굴됐습니다. 이곳에서는 약 2만5000년 전까지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화석 수십 개가 발견됐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과 아이들이 많았는데, 흥미로운 특징이 있었습니다. 부서진 조각들이 많았고 두개골이나 얼굴 부위가 적었습니다. 그리고 뼈 곳곳에 칼자국이 나 있었고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당시 인류학자들은 식인 풍습의 흔적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즉, 네안데르탈인이 식인종이었다는 거죠. ○ 인간 도살의 흔적을 찾아라
메리 러셀 전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인류학과 교수는 1980년대에, 이들에게 정말 식인 풍습이 있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바로 뼈에 남은 칼자국의 특징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러셀 전 교수의 생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만약 네안데르탈인이 서로 잡아먹었다면(즉, 식인종이었다면) 화석에서 보이는 칼자국은 도축을 한 흔적과 비슷해야 할 겁니다. 이 경우 고기를 발라내기 때문에 보통 뼈의 중간 부분에 칼자국이 남습니다. 반대로 식인을 한 것이 아니라 시신을 한 번 매장한 다음 나중에 꺼내 뼈를 손질해 묻는 ‘2차장’을 했다면 어떨까요? 뼈를 다듬었기 때문에 뼈끝에 칼자국이 있습니다. 러셀 전 교수는 후기 구석기인들이 잡아먹은 큰 짐승의 뼈와 미국 인디언들의 골당(2차장을 치른 인골들을 모셔두는 곳)에서 나온 뼈를 모아 조사해 봤는데, 실제로 예상한 것과 같은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럼 크라피나 화석의 칼자국은 어땠을까요? 칼자국은 뼈의 끝부분에 있었습니다. 식인이 아니라 장례를 지냈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지요. 이제 유력한 식인종의 증거가 사라졌습니다. 그럼 인류 역사에 식인 풍습은 없었다고 봐도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식인종이라 의심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식인종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했었거든요.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중에도 식인종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식인종이라는 영어 단어(cannibal)는 15세기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로부터 유래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도착한 땅이 인도라고 믿었고 원주민들은 몽골인 칸의 후예라고 오해해 ‘카니바스’족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유럽에는 이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보고했지요. 이후 식민지에 앞다퉈 진출했던 유럽의 선교사나 인류학자들도 식인종에 대한 비슷한 기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자료를 모아 검토해 보니 식인종 이야기는 하나같이 ‘소문’의 형식이었던 것입니다. 즉, “우리는 아니지만 숲 저쪽에 사는 놈들은 무지막지한 식인종이다”라는 기록은 많은데 직접 봤다는 기록이 전무했습니다. 심지어 맨 처음 콜럼버스가 “카니바스족은 식인종이다”라고 보고하게 된 것도 아라와크족의 증언을 통해서였습니다. ○ 잔혹함 속에 살아있는 사랑
네안데르탈인도 아니고 신대륙에도 없다면 식인종은 허구일까요. 또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식인 풍습을 지닌 종족이 발견됐거든요. 그것도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중반에요. 바로 파푸아뉴기니에 살고 있는 포레족입니다. (현재는 식인풍습이 금지됨)
그런데 포레족의 식인 풍습은 장례 절차의 일종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계 친족 여성들이 시신을 다듬습니다. 시신의 손과 발을 자르고 팔과 다리의 살을 저며 냅니다. 그 다음에는 뇌를 꺼내고, 배를 갈라서 장기를 들어냅니다. 그런 뒤 저며 낸 살은 남자들이 먹고 뇌와 장기는 여자들이 먹습니다. 여자들이 손질하는 중에 옆에서 구경하는 아이들도 먹습니다.
포레족은 왜 이런 끔찍한 장례를 치렀을까요? 이들은 자신들이 먹은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의 일부가 돼 동네에 계속 살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존의 야노마모족은 죽은 사람을 화장한 뒤 그 재를 죽에 섞어 친척이자 이웃인 마을 사람들끼리 나눠 먹습니다.
포레족의 식인 풍습은 끔찍합니다. 그러나 겉모습을 걷어내면 그 안에는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의 갈망인 사랑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식인 풍습이 이렇게 애틋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록상으로는 증오에서 유발되는 식인 풍습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이나 복수를 위한 싸움에서 잡아온 상대를 죽인 다음 심장, 피 등 상징적인 부분을 먹는 행위입니다. 증오의 상대를 ‘먹어 없애 버리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기록은 있지만 근현대에 직접 보고 기록한 예는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인간이 다른 인간을 먹는 행위는 식생활의 일환이 아닙니다. 어떤 집단이나 부족도 식생활의 한 방편으로 인육을 섭취하지 않았습니다. 의례적 상징 행위일 뿐이었습니다. 사랑이든 증오든,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열정이 의례의 형식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이들을 식인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인류의 과거에 대해 고고학과 인류학이 말해주는 내용 이상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식인 풍습이 있었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고 일부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문자 그대로의 ‘식인종’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sang-hee.lee@ucr.edu
700만 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 그 긴 역사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인류 진화에 대한 가장 뜨거운 주제들을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직접 들려드립니다. 이 글은 ‘과학동아’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동시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 이상희 씨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미국 미시간대 인류학과에서 고인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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