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 박진영 씨(40)는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3일 후 자동차로 북새통을 이루거나 아예 통제된 길을 헤치고 미야기 현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바람에 날리는 주인 없는 사진들, 잃어버린 사진을 수습하고 챙기는 주민들을 보게 된다. 지진 피해를 본 사람들은 가장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작가의 물음에 한결같이 가족 앨범이라고 답했다. ‘망각’에 저항하는 사진의 의미가 거대한 죽음의 쓰나미 앞에서도 유효했던 것이다.
그가 한 장 찍는 데 20분씩 걸리는 대형 카메라를 들고 재난 현장을 여러 차례 찾아가 찍은 다큐 사진을 소개하는 ‘사진의 길-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전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선 보도매체를 통해 접했던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감정을 절제한 사진으로 담담한 내러티브를 펼쳐간다. 과장과 왜곡의 분칠한 사진이 아니라 엄정한 진실에 무게를 둔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도 ‘순간’의 의미를 차갑지 않게 드러낸 작업이다.
아이들의 책가방, 소중하게 간직해온 기념사진, 손때 묻은 카메라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바닥에 놓여 있다. 몸체에 뒤엉킨 철망만 아니면 금세 주인이 돌아올 것 같은 오토바이도 있다. 물건들의 주인은 어떤 운명을 맞이한 것일까. 다른 쪽엔 뼈대만 남은 3층 소방서 건물, 무너진 묘비로 가득한 공동묘지가 보인다. 이곳에 머물던 사람과 영혼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사진들은 관객의 가슴에 저릿한 파문을 일으킨다.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일깨우는 사진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본 사진과 함께 미야기 현에서 우연히 발견한 앨범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상 설치작품 ‘카네코의 방’도 눈길을 끈다. 그는 전몽각의 사진집 ‘윤미네집’처럼 일본의 아마추어 사진가가 딸의 성장 과정을 앨범사진으로 남겨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날 이후 60대로 추정되는 딸을 수소문했으나 행방불명된 상태. 일본인 사진가와 상상의 대화를 나누고 앨범 속 사진, 폐허 현장에서 주운 오브제로 엮은 작품이다. 전시는 3월 13일까지. 02-544-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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