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세계 동시테러를 꿈꾸는 혁명가들, 일상에 테러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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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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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혁명일기’ ★★★★

연극 ‘혁명일기’의 주인공들은 좌익 과격단체 조직원들이지만 정작 무대 중앙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차지가 되기 일쑤다. 조직원들은 관객에게 뒤통수를 보이며 교주의 이야기를 듣는 신도의 자세를 취하는데 이때 손님들은 일종의 거울이 되어 조직원들의 감춰진 참모습을 드러낸다.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연극 ‘혁명일기’의 주인공들은 좌익 과격단체 조직원들이지만 정작 무대 중앙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차지가 되기 일쑤다. 조직원들은 관객에게 뒤통수를 보이며 교주의 이야기를 듣는 신도의 자세를 취하는데 이때 손님들은 일종의 거울이 되어 조직원들의 감춰진 참모습을 드러낸다. 바나나문프로젝트 제공
실로 거창한, 아니 시대착오적 제목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에 혁명이라니. 그것도 적군파라는 악몽을 떨치고 고도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한 뒤 오히려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현대 일본에서.

12∼15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 일본 극단 청년단의 연극 ‘혁명일기’는 이렇게 관객의 의표를 찌른다. 게다가 이 연극의 극작가이자 연출가는 ‘조용한 연극’으로 유명한 히라타 오리자 아닌가.

연극의 주인공들은 실제 세계 동시 혁명을 꿈꾸는 좌파 혁명가들이다. 그것도 이론으로만 무장한 이들이 아니라 공항 폭파 테러와 대사관 습격이라는 살벌한 테러를 모의 중이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다.

그들이 위치한 공간은 깊은 산속도 아니고 도시 슬럼가의 지하벙커도 아니다. 도쿄 주택가 중산층의 안온해 보이는 가정집이다. 평범한 부부로 위장한 커플 조직원들이 마련한 아지트라고 하지만 와인을 마시면서 공항폭파 방식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게다가 틈틈이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더욱 지리멸렬하다. 후방의 ‘지원조’보다는 전방의 ‘투입조’가 낫다는 둥 투옥 와중에서 같은 조직원끼리 어떻게 결혼할 수 있었느냐는 둥 지도부의 변덕스러운 투쟁노선 변경을 따라야 하느냐는 둥 한가한 잡담에 가깝다.

미심쩍어 보이던 연극의 정체는 곧 이 위장한 아지트로 ‘초대받지 않는 손님들’이 등장하면서 뚜렷해진다. 그들을 평범한 소시민으로 알고 동네 소식지 편집을 맡아달라며 강짜를 부리는 이웃집 주부들, 그들이 합법적 활동을 펼치는 시민단체쯤으로 알고 지루한 일상탈출을 위해 ‘묻지 마 지지자’를 자처하고 나선 대기업 회사원과 초등학교 교사들, 그리고 조직을 이탈하고 평범한 삶을 택한 전직 조직원들….

방문객들은 혁명가들의 위장한 모습과 실제 정체 사이의 거리를 통해 제법 큰 웃음을 유발한다. 이웃집 주부들은 아마추어 밴드활동을 한다는 그들이 반항적인 록 밴드를 하는 줄 알았다가 온순한 재즈 밴드라는 말을 듣고 대놓고 실망한다. 그들의 정체를 절반쯤 알고 있는 ‘묻지 마 지지자들’은 번지점프를 즐기려는 이들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짜릿한 것을 찾는 호사가일 뿐이다. 그들의 전모를 알고 있는 전직 조직원들은 혁명을 한답시고 일상을 팽개친 어설픈 그들 인생살이의 증언자들이다.

연극은 그렇게 혁명가들이 테러를 가하고 싶어 하는 소시민적 방문객들을 희화화하다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혁명을 꿈꾼다는 이들이 소시민과 별반 다를 게 없음을 서글프게 풍자한다. 후반부 풍자는 한때 학생운동을 직간접으로 경험했던 중년 이상 한국관객에겐 너무도 친숙한 풍경이다.

혁명활동에 개인감정을 개입시키지 말라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기 바쁜 선배들, 지도부 노선에 비판을 가했다가 조직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교묘한 아전인수적 공격에 폭발하는 후배들, 일상에서 혁명의 숭고함을 강조하지만 정작 일상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동지들….

연극은 조직원끼리 얽히고설킨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그들을 통해 이념이니 대의니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최고 엘리트들로 구성된 집단이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면서 사이비종교집단으로 전락한 옴진리교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집필했다”는 히라타 씨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 연극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숨어있다. 그것이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종교 또는 혁명에 대한 열정(이념)은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연극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서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조직 주변에 모여드는 소시민들의 희극적 초상과, 패배감에 젖어 있으면서도 조직을 떠나지 못하는 혁명가들의 비극적 초상이 교차하면서 그려내는 음영의 결과다.

이를 통해 연극은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대한 대중적 착각에 슬며시 일격을 가한다. 탈(脫)이념의 시대가 곧 무(無)이념의 시대라고 믿는 착각 말이다. 우리에게 시대착오적인 것은 과거의 이념일 뿐이지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이념은 결코 아니다. 옴진리교의 비극을 막는다는 이유로 우리 삶에서 종교 자체를 지워버릴 수 없듯이.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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