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은 한나라 때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발명설이다. 유안은 한고조 유방(劉邦)의 손자로 기원전 164년 지금의 중국 안후이 성 일대인 회남의 왕이 됐는데 황제의 손자인 데다 도교에 조예가 깊어 많은 추종자가 그를 따랐다. 도교 수련자들은 콩국물을 마시며 도를 닦았는데 어느 날 심심한 맛에 질려 소금을 넣어 마시고 남은 국물을 보관했더니 굳어서 두부가 됐다. 유안이 비법을 백성에게 알려주어 두부가 민간에 퍼졌다. 고문헌에 나오는 유안의 두부 발명 이야기다.
그러나 기원전 2세기 사람인 유안이 진짜 두부를 만들었을까. 실제 두부를 맛보기는커녕 구경조차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두부를 만들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6세기 양나라 때 사작이 쓴 송습유록(宋拾遺錄)이라는 책이다. “회남왕이 두부를 만들어 그 기술을 세상에 전했다”고 나온다. 이어 12세기 남송 때 주자(朱子)가 쓴 시에 “일찍이 회남왕이 두부 만드는 기술을 알았다”고 했다.
두부를 발명했다는 회남왕 유안과 그 사실을 처음 기록한 사작 사이에는 약 700년이라는 시차가 있고, 다음 기록을 남긴 주자와 사작과도 600년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제갈공명이 만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처럼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짙다.
일반적으로 두부는 5, 6세기 남북조시대에 만들기 시작해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 때 보급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두부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질 무렵 유안이 두부를 만들었다는 스토리가 창작되었고 이후 두 책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면서 유안 발명설이 정설처럼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두부가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을까. 두부는 실크로드가 만들어 낸 식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비단길을 따라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식품인 치즈(버터)가 중국에 전해지는데 우유 생산이 적은 중국에서는 치즈를 충분히 만들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두유를 이용해 치즈 대용품으로 만든 것이 두부라는 것이다.
두부 만드는 기술이 크게 발전한 당나라 전후는 중국과 서역 유목민족 사이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다. 이때 서역의 여러 문화와 음식이 중국으로 전해진다. 유목민족의 음식 중에는 치즈 요구르트 같은 각종 유제품도 있었다. ‘북사(北史)’ 열전에는 수나라 문제가 유가공 제품인 제호(醍호)를 구해 바친 장군에게 비단 100필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있다. ‘당서(唐書)’에는 현종이 손님을 대접할 때 서역의 유제품을 내놓았다고 했다. 치즈 같은 유제품이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치즈는 한자로 내락(내酪)이라고 쓴다. 낙(酪)은 젖이 굳어서 말랑말랑해진 것이다. 유부(乳腐)라고도 한다. 부(腐)는 연하고 말랑말랑한 상태를 표현하는 글자다. 동물의 젖(乳)이 연하게 굳은(腐) 식품이 바로 유부다.
두부(豆腐)는 콩국물이 연하게 굳은 상태다. 유목민이 동물의 젖을 이용해 유부를 만드는 것처럼 농민들은 콩젖(豆乳)에 소금을 넣으면 식물성 단백질이 응고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두부가 서역의 고급식품인 치즈를 모방한 대체품에서 비롯됐다는 실크로드 기원설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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