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서산 천수만 철새 도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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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창공 향한 힘찬 날갯짓… 철새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전문

천수만 간척지 들판에서 낟알을 찾아 먹고 있는 겨울철새 큰기러기떼. 기러기는 낮에 먹이를 찾고 밤엔 천적이 없는 물 위에서 무리지어 쉰다. 오리는 그 반대로 낮에 쉬고 밤에 들판으로 나간다. ‘새는 울어/뜻을 만들지 않고/지어서 교태로/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그 순수를 겨냥하지만//매양 쏘는 것은/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박남수 시인 ‘새’에서). 그렇다. 철새는 죽어서도 날개를 접지 않는다. 결코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날갯죽지를 완강하게 펴고 있다. 장엄하다. 철새는 그렇게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천수만=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천수만 간척지 들판에서 낟알을 찾아 먹고 있는 겨울철새 큰기러기떼. 기러기는 낮에 먹이를 찾고 밤엔 천적이 없는 물 위에서 무리지어 쉰다. 오리는 그 반대로 낮에 쉬고 밤에 들판으로 나간다. ‘새는 울어/뜻을 만들지 않고/지어서 교태로/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그 순수를 겨냥하지만//매양 쏘는 것은/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박남수 시인 ‘새’에서). 그렇다. 철새는 죽어서도 날개를 접지 않는다. 결코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날갯죽지를 완강하게 펴고 있다. 장엄하다. 철새는 그렇게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천수만=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철새들은 끼룩대면서,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낄낄대면서, 저 너머 또 어디론가 떠나간다. 모두들 끼리끼리 논다. ‘자기들의 세상’에만 탐닉한다. 서로 강철대오를 이루어 조금도 곁을 허용하지 않는다. 끼리끼리 찧고 까불며, 자기들끼리 깔쭉대며 논다. 사람세상은 늘 그렇다. 하지만 새들도 그럴 줄이야. 새들도 자기들끼리 ‘한 세상 떼어 메고’ 날아갈 줄이야.

서산천수만은 얕다. 얕을 ‘淺(천)’자의 ‘淺水灣(천수만)’이다. 물고기가 알을 낳기 좋다. 민물고기가 많다. 철새들이 모여든다. 주변엔 1만121ha(약 3060만 평)이나 되는 들판이 있다. 겨울들판엔 낟알도 많다.

천수만은 1995년 갯벌을 막아 논으로 만든 간척 땅이다. A지구 방조제 안쪽이 간월호, B지구 방조제 안쪽이 부남호이다. 새들은 간월호 쪽에 더 많다. 하지만 한겨울엔 호수 바닥이 얼어붙는다. 쉴 곳이 없다. 보통 새들은 쉴 때 천적이 접근할 수 없는 물 가운데에서 나래를 접는다. 결국 천수만 새들은 물이 흐르는 간월호 위쪽 해미천 장지천 쪽에 몰려들 수밖에 없다.

거대한 군무(群舞)로 이름난 가창오리들은 보이지 않는다. 11월께 이미 해남 등으로 내려가 쉬고 있다. 2월 중순쯤 돼야 다시 천수만에 나타날 것이다. 천수만에서 1, 2주일 동안 힘을 비축한 뒤 다시 북녘으로 날아간다.

경허(鏡虛·1849∼1912) 선사와 그의 제자 만공(滿空·1871∼1946) 스님의 발자취가 서린 간월암(위쪽) 낙조. 간월호 상류 큰고니의 날갯짓. 큰고니는 4, 5마리의 가족 단위로 산다. 이동할 때도 아빠 엄마 고니가 맨 앞에서 이끈다. 천수만=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경허(鏡虛·1849∼1912) 선사와 그의 제자 만공(滿空·1871∼1946) 스님의 발자취가 서린 간월암(위쪽) 낙조. 간월호 상류 큰고니의 날갯짓. 큰고니는 4, 5마리의 가족 단위로 산다. 이동할 때도 아빠 엄마 고니가 맨 앞에서 이끈다. 천수만=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요즘 천수만엔 큰기러기 쇠기러기 청둥오리가 가장 많다. 큰고니도 수백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희귀새인 노랑부리저어새 40∼50마리와 두루미 2, 3마리도 가끔 눈에 띈다.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큰기러기 청둥오리 등은 옹기종기 모여 한데 어울리지만, 두루미는 철저하게 따로 논다. 그만큼 보기 어렵다. 하기야 두루미는 황새(평균 날개 길이 112cm)보다도 약 30cm나 크다. 어찌 오리 기러기 따위가 봉황과 같이 놀 수 있을까. 다만 황새는 나무에 둥지를 틀지만, 두루미는 나뭇가지에 앉지 못할 뿐이다. 뒷발가락이 짧고, 다리 위쪽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황새는 ‘큰새’라는 뜻의 ‘한새(大鳥)’에서 온 말이다.

동틀 무렵 천수만은 부산하다. 얼어붙지 않은 간월호 상류는 ‘철새 수상비행장’이나 마찬가지다. 뜨거나 내려앉는 새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야행성 오리는 밤새 들판에서 낟알을 주워 먹고 떼를 지어 물 활주로에 내려앉는다. 배부른 데다 엉덩이가 무거워 아슬아슬하다. “첨버덩!” 발보다 꽁지가 먼저 닿는 것 같다. 이제 낮 동안 오리들은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물장구치면서 쉴 것이다.

주행성인 기러기들도 일출에 맞춰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밤새 쉬었으니 이제 먹이를 먹으러 나가야 한다. 들판에 나가 해질 때까지 낟알을 찾아야 한다. 큰고니도 주행성이다. 밤새 날개에 고개를 파묻고 자다가 해가 떠오르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목을 몇 번 좌우로 흔들어 풀어주고, 물속에 고개를 처박으며 한 바퀴 돈다. “곤! 고온! 고니! 고니!”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너울너울 ‘헛날갯짓’을 해댄다.

큰고니들은 자주 날지 않는다. 그저 물 위를 소리 없이 미끄러질 뿐이다. 큰고니는 갈대뿌리 등을 즐겨 먹기 때문에 굳이 날 필요도 없다. 갈대 숲 언저리가 바로 먹이 공급처인 것이다. 사람들이 들판에 배춧잎이나 무 고구마 등을 뿌려주지 않는 한, 멀리 나가지 않고 주로 물 위에서 논다. 몸길이 140cm 정도로 거의 두루미 체격만큼 큰 탓도 있다. 한 번 날 때마다 에너지가 엄청 소비된다.

송준철 천수만밀렵감시원(59)은 “잿빛 고니는 새끼들인데 2, 3년 지나야 어미처럼 흰색이 됩니다. 기러기나 오리는 벼 낟알을 즐겨 먹기 때문에 먹이다툼을 곧잘 벌이지만, 조개 물고기 잡아먹고 사는 노랑부리저어새는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고 말한다.

김신환 씨(60)는 천수만 지킴이로 통한다. 천수만에서 15년 넘게 야생동물 보호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해는 인터넷 성금 모금과 사재를 털어 2500만 원 상당의 먹이를 새들에게 나눠 줬다. 그는 “천수만 철새가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천수만은 원래 물고기 산란장인 ‘바다의 자궁’ 같은 곳이었는데, 그걸 도려내고 쌀 나오는 ‘인공 위’를 만들어 버렸으니, 그저 가슴이 아프지요”라고 말한다. 그는 올해도 새들과 먹이를 나누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새의 뼈는 비어 있다. 폐엔 더운 공기가 가득한 공기주머니와 연결돼 있다. 날아갈 연료인 지방을 빼곤 몸을 최대한 비운다. 그런데도 거의 20% 가까이 이동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시베리아에 살던 도요새가 호주에 도착했을 땐 날갯죽지를 축 늘어뜨린 채 잘 가누지도 못한다. 체중이 출발할 때에 비해 절반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구만리장천을 날다 죽은 새는 날갯죽지를 편 채 죽는다. 장엄하다. 철새의 꿈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 장거리 떠나는 철새, 몸무게 40% 이상 불려야

겨울 철새는 한여름 시베리아 등 북녘에서 새끼 낳고 살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남쪽으로 내려오는 새들이다. 오리 두루미 황새 고니 기러기 독수리 칡부엉이 논병아리가 그렇다.

여름 철새도 있다. 봄철 제비처럼 따뜻한 남쪽에서 날아와 새끼 낳고 살다가, 추워지면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는 새다. 뻐꾸기 꾀꼬리 두견이 뜸부기 후투티 물총새 파랑새 솔부엉이의 울음소리를 겨울에 듣지 못하는 이유다.

나그네새는 한반도가 중간 기착지다. 시베리아에서 호주까지 엄청난 거리를 가는 중간에, 잠깐 우리나라에 머물며 체력을 비축하는 것들이다. 도요새 제비갈매기 물떼새 흰배멧새 꼬까참새는 봄가을 두 번 우리나라를 통과한다.

떠돌이새는 가까운 부근에서 움직이는 텃새다. 한여름에는 먹이가 풍부하고 시원한 깊은 산속에서 보내고, 가을에서 봄까지는 낟알 등 먹이가 많고, 따뜻한 평지에서 보낸다. 굴뚝새 말똥가리 물까마귀 새매들이 그렇다. 한곳에 둥지 틀고 붙박이로 사는 까치나 참새와 다르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 철새들은 에너지를 비축한다. 뱃살에 글리코겐을 잔뜩 저장한다. 보통 몸무게 40% 이상 불려야 수천수만 km를 날 수 있다. 도요물떼새는 절반 정도가 지방질이다. 속도도 다르다. 매 종류는 시속 50∼65km로 날지만, 작은 새들은 40∼50km로 날아간다.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바람을 타는 경우가 많다. 작은 새는 매에게 잡아먹힐까 봐 밤에 주로 이동한다.

방향은 어떻게 감지할까. 낮에 이동하는 새는 태양의 위치, 밤은 별자리를 보고 간다는 설이 유력하다. 육지 지형지물을 기억했다 그걸 보고 간다거나,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안다는 설도 있다. 자기장 변화를 감지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날아가는 높이나, 나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두루미같이 V자 형태로 나는 것들은 맨 앞이 우두머리이다. 우두머리 새가 상승 기류를 만들며 나아가면, 뒤따르던 것들은 70%의 에너지로 날 수 있다. 리더가 지치면 다른 새가 자리를 바꿔 준다.
■ 서산 어리굴젓은 간월도서 나는 게 ‘최고’


서산 어리굴젓은 간월도에서 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천수만에서 자라는 서산 굴은 씨알이 작다. 통영 굴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 통영 굴은 속살이 뽀얗고 물컹하다. 굴은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다. 통영 굴은 바닷물 속에서 양식하므로 성장하는 내내 플랑크톤을 먹는다. 서산 어리굴은 바닷물이 가득 찰 때만 플랑크톤을 먹을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햇볕에 드러나 성장이 멈춘다. 한마디로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어리굴은 작지만 맛이 달고 차지다. 더구나 굴 둘레에 돋은 잔털(날감지, 물날개)이 7, 8겹이나 된다. 그만큼 고춧가루 등의 양념이 골고루 잘 밴다. 씨알이 굵은 굴은 상대적으로 잔털이 드물다. 양념이 잘 배지 않는다. ♣섬마을간월도어리굴젓 041-669-1290, 무학어리굴젓 041-662-4622
■ 철새관찰 준비 요령


1. 철새 관찰은 인내력 싸움이다. 해 뜨기 전후 2시간 사이가 새들의 움직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황금 탐조시간대’이다. 두툼한 방한복은 두말할 필요 없다.

2. 새는 사람보다 눈이 8∼40배는 밝다. 귀도 밝고 냄새에도 민감하다. 향수 등 화장품은 금물. 큰 소리 치면 금세 반응한다. 울긋불긋 튀는 옷차림도 새를 불편하게 만든다.

3. 배율이 7∼9배 정도인 쌍안경 필수. 배율이 너무 높으면 시야가 좁아질뿐더러 어지럽다. 바다 호수 등 넓은 곳에선 망원경(20∼25배)을 가져가도 도움이 된다.

4. 장소에 따라 장화가 필요한 곳도 있다. 미니 조류도감과 수첩도 유용하다.

■ 철새 박물관 ‘서산버드랜드’로 오세요


‘천수만 철새를 보려면 서산버드랜드부터 가보라.’ 서산버드랜드는 철새박물관이다. 멋진 피라미드형 건물의 생태공원이다. 천수만에 날아오는 가창오리,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큰기러기, 왜가리, 황새, 황조롱이, 참매 등 온갖 새들의 박제를 볼 수 있다.

철새들이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날아올 수 있는지, 언제 와서 언제 가는지, 날갯짓은 무슨 원리로 하는지 등을 해설사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내로라하는 사진작가들의 철새 작품도 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4D입체 영상관(입장료 2000원)이 압권이다. 영상물을 보면 천수만의 온갖 철새들이 머리 위로 날아오르고, 실제 눈과 바람, 물방울도 머리 위로 날린다. 좌석이 수시로 좌우로 뒤틀리고 출렁인다. 영상 내용에서 기러기가 천둥번개에 놀라 허둥대면, 동시에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의 좌석이 심하게 요동치면서 물방울 섞인 바람이 불어오는 식이다. 실감이 나는 데다 재미가 곁들여져 아이들이 좋아한다.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간마다 상영. 041-664-7455, www.seosanbirdland.kr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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