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동쪽 10구에 위치한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빵집이 있다. 바로 ‘뒤팽 에 데지데’. 우리말로 하면 ‘빵과 생각’이라는 뜻이다. 범상치 않은 가게 이름처럼 이곳은 프랑스빵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프랑스빵은 예쁘고 섬세한 맛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아 왔다. 하지만 이곳은 투박하지만 비범한 맛과 모양의 빵으로 유명하다. 눈썰미 있는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프랑스 연예인들도 즐겨 찾는다.
빵집 주인이자 주방장인 크리스토프 바쇠르 씨(43)는 과거 패션업계에서 일했다. 제빵을 배우기 시작한 건 서른 살 무렵. 3년 후인 2002년 2월 22일에는 120년 된 빵집을 인수해 가게를 차렸다. 그는 많은 제빵사 중 한 명이 아니라 ‘바로 그 제빵사’가 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마침내 그는 2008년 프랑스의 유명 미식 매거진 고미요(Gault Millau)가 선정한 ‘올해 파리 최고의 제빵사’가 됐다.
패션업계 출신 제빵사답게 120년 역사의 빵집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쇼윈도와 천장, 밀가루 포대를 투박하게 쌓아 놓은 모습은 이곳이 몇 대를 이어 내려온 빵집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보통 빵집이 스테인리스나 나무로 된 상자에 빵을 진열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어디서도 쉽게 보기 힘든 세라믹 소쿠리들이 놓여 있다. 소쿠리 안에는 브리오슈, 크루아상, 쇼콜라틴 등을 비롯해 이 가게에서 창작한 큼지막한 빵이 진열돼 있다.
특히 사과파이 ‘쇼송 오 폼’은 각종 프랑스 미식 잡지들이 최고로 평가했을 만큼 맛과 창의성이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사과파이 안에 사과를 간 퓌레를 넣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사과 반쪽을 그대로 썰어 넣는다. 당도가 덜하고 사과의 식감과 신선한 향이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이 파이는 빵이 나오는 타이밍을 놓치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기 메뉴다.
실제 빵을 만드는 과정에도 예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다. 프랑스인의 아침을 책임진다는 바게트 대신 이 가게에서만 파는 큰 사각 모양의 ‘르 팽 데자미’가 좋은 예. 빵의 재료인 전통 밀가루를 100km나 떨어진 곳에서 직접 공수하고, 손으로만 반죽한다. 여기에 밀가루 1kg당 2g밖에 안 되는 소량의 효모를 넣어 이틀 동안 발효한 뒤 굽는다. 처음에 센 불로 굽다가 나중에 약한 불로 마무리하면 겉은 바삭거리지만 속은 부드러운 명품 빵이 완성된다. 겉 부분의 거친 식감이 처음에는 낯설지만 이내 씹을수록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에 입을 계속 오물거리게 된다.
파리에는 골목골목에 비범한 빵집이 많다. 하지만 이 중에서 ‘뒤팽 에 데지데’는 남다르다. 잘 만들어진 빵 하나를 맛본다기보다 잘 숙성된 어느 제빵사의 철학을, 혹은 생각을 맛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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