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기록이다. 일본 NTV의 지난해 4분기 수목드라마 ‘가정부 미타(家政婦のミタ)’는 최근 10년 새 일본드라마(일드)에선 찾아보기 힘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종회 시청률이 40%에 이른 건 2000년 ‘뷰티풀 라이프’(기무라 다쿠야 주연) 이후 처음이다. 최근 일드 업계는 엄청난 물량과 스타 공세에도 평균 시청률 1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드라마가 속출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였다.
엄마가 아빠의 불륜으로 자살했다. 한 가정에 투하된 ‘폭탄’으로 이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인간다운 감정은 조금도 없는 가정부 미타가 이 붕괴 직전의 가정에 들어온다. 폐허만 남은 것 같은 집에서 미타는 엄마의 유품을 불태우고 아빠의 불륜을 폭로한다. 언뜻 파괴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의외로 모두를 진실 앞에 바로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그들의 등을 떠민다.
이 드라마에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감당하기 힘든 불행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진실을 감추거나, 무작정 분노하거나, 문제를 외면하거나, 스스로를 동정하거나. 미타는 그 모든 방식을 꾸짖으며 모두에게 불편하지만 가장 직설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가정부 미타’와 함께 볼만한 4분기 드라마로 꼽힌 작품은 ‘남극대륙’(TBS 개국 60주년 기념)이었다. 패전 직후 일본에 희망을 준 남극탐험대의 고난과 역경을 그린 내용은 역시나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해 3월 홋카이도 로케 당시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실감했다는 주연 기무라 다쿠야의 체험담은 이런 느낌을 더욱 강렬하게 했다. 하지만 “꿈을 가지면 돼,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돼”라고 속삭이는 ‘남극대륙’은 외면당했다. 화려한 캐스팅과 물량 공세에도 첫 회 20%를 넘긴 후 시청률이 급전직하, 5회에서는 13%대까지 추락했다.
‘가정부 미타’는 성공하고, ‘남극대륙’은 실패했다. 이 대조적 결과는 ‘살아갈 의지’나 ‘꿈과 희망’을 노래하던 일드의 교훈적 화법이 이제 일본사회에 먹히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듯하다. 최근 수년간 이어져 오던 일본사회의 무기력, 대지진으로 노출된 시스템의 실패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미타의 등장만으로도 금세 본모습을 드러내며 악다구니를 쓰는 가족의 모습은 대지진으로 몸집을 키운, 일본사회의 트라우마를 짐작하게 한다.
물론 ‘가정부 미타’는 모두가 눈물 흘리며 서로를 이해하고 문제는 적당히 방치한 채 사랑으로 재결합하는 상투적 결말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런 결말은 대중문화가 늘 그렇듯 잠시 눈 가리고 아웅 하기 위해 입히는 당의정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은 대중이 미타의 파괴적 방식에 뭔가를 느끼고 지지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패전과 원폭이 일본사회에 남긴 트라우마는 역설적이게도 수십 년간 일본 대중문화에서 ‘영감의 원천’이 됐었다. 미타는 2011년 대지진의 트라우마가 탄생시킨 일본 대중문화의 첫 번째 ‘돌연변이’다. 미타는 이제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그간 한국사회가 일본사회의 몇몇 모습을 수년의 시차를 두고 닮아왔다는 점에서, ‘미타의 탄생과 진화’는 우리 역시 분명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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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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