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 시인 “방 안서 자연 품은 우리 옛집, 세상에서 가장 넓은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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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일 03시 00분


본보 오피니언 면에 ‘옛집 읽기’ 연재하는 함성호 시인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를 불러들인다는 점에서 시와 건축은 닮았다”고 말하는 함성호 시인. 열림원 제공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를 불러들인다는 점에서 시와 건축은 닮았다”고 말하는 함성호 시인. 열림원 제공
“우리는 현재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식 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현재의 삶과 매우 다른 생활을 했지요. 조선의 옛집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1일부터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함성호의 옛집 읽기’를 연재하고 있는 함성호 시인(49). 그는 수많은 집과 사무실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이지만 건축평론가와 만화비평가로 활동하며 책도 여러 권 냈다. 때때로 설치작품을 만들어 현대미술 전시회도 열고, 공연기획자로 나서기도 한다.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들쑤시고 다닌다는 뜻에서 명함에는 ‘오지래퍼’라는 직함을 달았다. 그는 2000년 이후 전통 건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전국을 답사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옛집 중에는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우암 송시열, 남명 조식 등 성리학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이 많았다. 유서 깊은 반가(班家)에는 집 부근의 산세와 산맥을 그려둔 ‘산경표(山經表)’가 족자로 걸려 있는 점도 놀라웠다.

“우리의 옛집은 서양건축처럼 하나의 동떨어진 오브제가 아닙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산맥, 대지, 땅, 물과 어우러짐까지 고려한 엄청난 스케일의 건축입니다. 옛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심포, 다포’와 같은 양식보다는 그 너머에 담겨 있는 옛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함 시인은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이 우리 옛집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기 위해 2003년부터 홍익대 앞 건축사무소에 ‘맹꽁이 서당’을 차리고 3년간 동료 건축가들과 한문을 공부했다. 그는 “퇴계 이황은 자신의 철학적 깨달음을 담은 그림 ‘성학십도’를 현실세계에 구현하기 위해 도산서원을 지었다”며 “도산서원은 가장 완숙한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동양철학의 정원”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의 반가는 방이 굉장히 작습니다. 그러나 방 안에 들어서면 전혀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외부의 풍경을 방 안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강원 속초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 건축과를 졸업할 때까지 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1989년 고 추송웅 씨의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보고 “나도 희곡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휩싸였다. 습작을 한 편 써서 고 김규동 시인에게 보냈는데, 선생이 “뛰어난 이야기 시(詩)”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1990년 문학과사회에 3편의 시로 등단했고, 이후 ‘56억7천만년의 고독’ ‘성 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등의 시집을 내면서 중견시인이 됐다.

그는 최근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아내를 위한 집을 직접 지었다. 옥탑방에서 인근 산봉우리에 걸린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이다. 요즘엔 집 안에서 건축설계도 하고, 시도 쓰고, 만화도 보고, 그림도 그린다.

함 시인은 동아일보 연재 칼럼을 통해 옛집의 뒤뜰에 대나무 숲을 조성한 이유, 처마의 길이, 풍경 소리, 담벼락 등 옛집 곳곳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살필 예정이다. “문화재 관리하는 분들은 제발 문을 꼭꼭 잠가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 건축은 서양 건물처럼 바깥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꼭 마루에 올라가 보고, 방 안에 앉아 차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바라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옛집읽기#함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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