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는 2008년 봄부터 계간 청소년잡지 ‘풋’에 이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차례 마감을 하지 못하더니 급기야 2009년 여름을 끝으로 연재를 중단했다. 작가는 3년 만에 작품을 완성해 단행본으로 펴냈다. 그 곡절은 무얼까.
“처음에는 청소년잡지에 실린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보통 계간지 같으면 쓰지 않을 초능력 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썼는데 이야기 설정이 너무 무리였죠.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됐어요. 하하.”
이번에 책으로 내면서 현실감을 강화했다는 설명대로 초능력자들이 나오지만 공상과학도, 판타지도 아니다. 청소년잡지에 연재했지만 성인들에게 더 어울릴 법하다.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초능력 소년 정훈을 비롯해 정부로부터 탄압받은 사람들이 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훈은 채소 행상을 하는 아버지가 모는 트럭을 타고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트럭은 도주하는 간첩이 탄 차량을 들이받았다. 아버지는 죽고, 홀로 남은 정훈은 애국지사의 아들로 칭송되며 ‘원더보이’로 불린다. 상상력은 여기서 도약한다. 사고 당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흰 빛을 본 정훈은 회복된 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물건의 이력을 알아내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정보당국은 정훈을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수집에 이용하려고 하지만 정훈은 탈출한 뒤 도망자 신세가 돼 쫓긴다.
그렇다고 속도감 넘치는 추격전을 기대해선 안 된다. 쫓기는 정훈이 만나는 상처 입은 인물들을 통해 1980년대 사회상을 매우 정적으로 그려낸다. 화염병을 제일 잘 던진다는 선재 형, 여자지만 고문을 당한 첫사랑을 먼저 떠나보낸 피해의식으로 남장을 하고 다니는 강토 형(희선), 해직기자 출신 출판사 대표 재진 아저씨 등. 이들은 폭압적인 사회에 분노하고 항거하지만 결국 처절하게 부서진 자화상과 대면하게 된다. 이들의 아픔이 천진난만한 정훈의 눈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지면서 슬픔은 더욱 증폭된다.
작품을 꿰뚫는 정서는 그리움이다. 삶이 엉켜버린 인물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과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다. 정훈은 먼저 간 아버지를, 그보다 먼저 세상을 뜬 어머니를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 한다. 작가는 이런 애절한 소망을 수많은 별에 대입시킨다. 주사위를 무한히 던진다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던질 수 있듯이, 우주가 무한에 가깝다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웃음과 눈물이 짜지 않게 적절히 버무려졌다. 권대령, 이만기, 쌍둥이 초능력자 등 각기 독특한 어투를 가진 악역들은 감초 역에 충실하다. 마지막 장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끌고 가는 19년차 작가의 노련함은 뛰어나지만 다소 늘어진다는 느낌도 든다. 편집 과정에서 인물의 ‘대화’와 ‘생각’ 부분을 비슷한 활자체로 표기한 탓에 읽기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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