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지만 쇠뼈를 곤 국물에 선지와 양, 우거지, 콩나물을 넣고 얼큰하게 끓인 선지해장국 역시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찾는 별미 음식이다.
선지해장국은 오래전부터 주당들이 지난밤 마신 술로 쓰린 속을 달래는 특효 해장국이었다. 1930년대에 이미 청진동에 선지해장국집이 들어서면서 명성을 떨쳤고 이 무렵의 동아일보(1931년 10월 1일자)도 ‘오늘의 요리’로 선짓국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선짓국을 쇠피로 끓였다고 한자로 우혈탕(牛血湯)이라고 소개하면서 “선지는 토장국에 흔히 먹으나 젓국에 끓이는 것이 좋다. 처음에 고기와 곱창을 넣고 파와 후춧가루를 치고 새것을 익혀 함께 넣고 끓인 후에 두부를 번듯번듯하게 썰어 넣고 선지를 채반에 건져 한 덩이씩 착착 넣는다”고 했다. 그 시절에도 많은 사람이 속을 풀기 위해 선짓국을 찾았던 모양이다.
선지는 동물의 피로 인류에게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으며 사람들은 피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고대 주나라의 예법을 적었다는 주례(周禮)에는 “피로 사직에 제사를 지낸다”고 나오고 한자로 혈(血)이라는 글자 자체에도 동물의 피로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먹었던 음식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나라와 민족마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먹는 선지가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짓국에는 소의 피를 넣고 순대에는 돼지 피를 넣는 것처럼 주로 소와 돼지의 선지를 먹지만 중앙아시아 유목민은 말의 피를 마셨고, 중국에서는 오리 선지를 주로 먹는다.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군대가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술로 아시아와 유럽 일부를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선지를 꼽기도 한다. 선지가 훌륭한 병참 역할을 해서 병사들이 배를 곯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음식의 역사’라는 책에는 13세기 몽골군이 장거리 이동을 할 때 조달했던 양식 중 하나가 말의 피였다고 나온다.
몽골군은 열흘의 일정으로 떠날 때 여러 마리의 말을 줄로 엮어 함께 끌고 다녔다. 말이 지치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도록 계산한 측면도 있지만 식량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거리 이동 중 휴식을 취할 때 몽골기병은 말의 정맥에 상처를 내어 혈액을 마셨다. 보통 말 한 마리당 0.5L의 혈액을 얻을 수 있는데 열흘 간격으로 돌아가며 마시면 말에게 무리를 주지 않고도 병사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무거운 식량을 수송하지 않으니 기동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이동 시 연료가 부족해 요리를 못하거나 요리 도중 불빛으로 적군에게 발각되는 위험도 막을 수 있었다. 칭기즈칸이 구사한 전격전의 배경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선지라는 살아있는 병참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주로 오리 피로 선지를 만들어 먹는다. 지금도 중국 시장이나 뒷골목에 가면 오리 피로 만든 선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주로 선지로 국을 끓여 해장국 형태로 먹지만 중국에서는 주로 두부를 만들어 먹는다. 청나라 때의 본초편독(本草便讀)에는 오리 선지두부가 성질이 차갑고 기운을 보충하며 해독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역시 해장용으로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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