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사서 고생한 사서’… 도서관과 결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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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5일 03시 00분


국회도서관 최장 근무… ‘왕언니’ 주애란 국장

60주년을 맞는 국회도서관에서 35년을 근무한 주애란 정보봉사국장. 국회도서관의 최고참인 그는 “제가 신입이었을 때는 계장, 과장은 도장만 찍었는데 제가 막상 그 자리에 가니까 함께 일을 해야 하는 분위기로 변하더라”며 웃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60주년을 맞는 국회도서관에서 35년을 근무한 주애란 정보봉사국장. 국회도서관의 최고참인 그는 “제가 신입이었을 때는 계장, 과장은 도장만 찍었는데 제가 막상 그 자리에 가니까 함께 일을 해야 하는 분위기로 변하더라”며 웃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국회도서관이 1952년 2월 20일 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경남도청 건물 ‘무덕전’을 빌려 개관했을 당시엔 직원 1명, 장서 3000여 권으로 오늘날의 ‘마을 도서관’ 수준이었다. 현재는 직원 300여 명에 일반도서 320만여 권, 전자파일도서 89만여 권, 비도서 자료 35만여 건 등을 보유한 대형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1998년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된 이후 방문객이 급증해 지난해에만 97만7000여 명이 다녀갔다.

올해 회갑을 맞은 국회도서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은 주애란 정보봉사국장(58·3급 부이사관)이다. 1977년 7급 특별채용으로 들어와 35년간 도서관을 지켰다. 13일 국회도서관에서 만난 ‘왕언니’는 “입사한 후 10년 동안은 책상 밑에 사직서를 보관하고 근무하기도 했다. 이렇게 오래 근무할지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국회도서관에 어떻게 들어오셨나요.

“1976년 성심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아 원주여고에 발령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방에 내려가기가 싫은 거예요. 아버지가 평소 ‘여자 직업은 교사 아니면 사서가 좋다’고 하셔서 다시 성균관대 사서교육원 과정을 마치고 1977년 특채로 들어왔지요. 저를 포함해 4명이 지원해 2명이 뽑혔어요.”

―생각보다 경쟁률이 낮은데요.

“당시만 해도 공무원이 박봉이라 인기가 없었어요. 제 월급이 5만 원밖에 안 됐죠. 산업화시대고 하니 대기업이나 은행 같은 곳이 인기가 높았죠. 저도 기회가 되면 나가려고 했어요.”

―도서관 풍경도 많이 바뀌었지요.

“순환 보직을 했는데 가장 오랫동안 한 일은 ‘정기간행물 기사색인’과 ‘석박사 학위논문 총목록’ 제작이었어요. 1981년부터 8년간 했지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 연구자와 논문의 이름 등을 묶은 석박사 학위논문 총목록은 연구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어요. 매해 1000권을 찍었는데 다른 도서관 관계자와 연구자들이 서로 달라고 해 난감한 적이 많았죠. 직접 찾아와 ‘한 권만 주면 안 되느냐’고 부탁하는 교수들도 있었어요.”

―한때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었죠.

“1980년대만 해도 교수들은 교수 신분증을 가져와야 했고 대학원생은 학생증을 가져와야 했어요. 당시 등록금을 내면 학생증 뒷면에 도장을 찍어줬는데 그 도장이 없으면 출입이 안 됐죠.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공문서를 지참하고 왔어요.”

―도서관을 자주 찾는 의원은 누구인가요.

“홍재형 국회부의장님은 연 200일 이상 오신 적도 있고, 조순형 의원님은 거의 매일 오전 11시 국회도서관 5층 의원열람실에 오셔서 자료를 본 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드세요. 김춘진 의원님은 입법 관련 자료를 최근에 60건이나 신청할 정도로 정보 요청이 많은 분이죠.”

정치인 얘기가 나오자 그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1981년 1월 어느 추운 날 오후 9시쯤 퇴근하려고 경내를 총총걸음으로 가는데, 웬 승용차 한 대가 옆에 서며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더란다. 뒷자리에 함께 앉게 된 낯선 남자는 “국회서 무슨 일 하나” “몇 살이냐”고 몇 가지를 묻더니 용산 주 국장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비서에게 “(차에서 내려) 집 앞까지 바래다 드리라”면서 “(여자를) 멀리서 찾지 말라”고 농담을 건넸다. “나중에 동료에게 물어보니 ‘실세 중의 실세’라고 얘기를 해 깜짝 놀랐어요.”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주 국장은 미혼이다. 국회도서관과 결혼을 한 걸까. “모르겠어요. 예전만 해도 결혼을 하면 대개 여직원들은 그만뒀어요. 아기 낳으면 육아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고요.”

1970, 80년대만 해도 남녀 직원 비율이 반반이었다. 요즘은 4명 중 3명이 여성이다. 200∼300권을 한꺼번에 옮기는 ‘북트럭’을 여성들이 직접 옮기는 일이 늘었는데 방문턱을 넘는 게 힘겨웠다. 그래서 턱을 모두 없애버렸다.

“사서는 대출대에 앉아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면서 월급도 받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더니 주 국장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3D 업종이에요. 자리에 고상하게 앉아 있는 것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이죠. 열람자들이 못 보는 서고 같은 곳에서 청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막일꾼처럼 일해야 돼요. 오죽하면 ‘사서 고생하는 사서’라고 하겠어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국회도서관 환갑잔치 ▼

20일 개관 60주년… 타임캡슐에 전산자료-와인 등 묻고 각종 기념행사

국회도서관이 20일 개관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연다.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나비정원에서 열리는 기념식에는 홍재형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축하 자리를 갖는다. 도서관 이용 실적이 뛰어난 조순형 의원 등은 국회의장 상패를 받는다.

국회도서관 직원들은 기념 플래시몹(일정 시간과 장소를 정해 일제히 같은 행동을 벌이는 이벤트)을 펼치고, 국회도서관 머릿돌 아래 타임캡슐을 묻는다. 가로 세로 높이 각각 50cm에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들어진 타임캡슐은 개관 100주년을 맞는 2052년 2월 20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현재 국회도서관의 모습을 보존하자’는 취지에 따라 전산백업테이프, 행사 사진, 국회 기념품인 볼펜과 명함집 등이 캡슐 안에 들어간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국회 행사를 찍은 동영상을 담은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를, 유재일 국회도서관장은 와인 두 병을 넣을 예정이다. 유 관장은 “40년 뒤에 근무할 직원들이 와인을 나눠 마셨으면 좋겠다. 원래 책과 술은 가까운 관계가 아니냐”고 말했다.

오후 7시 반에는 국회도서관 중앙홀에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기념 음악회가 열린다. 오은경 소프라노, 박현재 테너가 협연한다.

일반인 33명의 ‘책 읽기에 대한 정의’를 전시하는 ‘길따라 책읽기’(20∼26일), 독도자료 전시회(20일∼3월 2일)도 마련했다. ‘도서관 공공가치와 정보공유-지식과 정보가 나비처럼 자유로운 세상’을 주제로 하는 국제심포지엄은 21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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