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9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세손과 결혼하며 로열패밀리의 일원이 된 캐서린(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30)와 그의 여동생 피파 미들턴(29). 영국의 타블로이드 언론은 미들턴 자매를 ‘위스티리어 시스터스(등나무 자매)’라고 부른다. 등나무처럼 매우 화려하고 좋은 냄새를 품고 있는 데다가 어디든 달라붙으면 무서운 기세로 타고 오를 수 있는 에너지까지 갖췄다는 뜻에서다.
미들턴 자매는 수수하지만 품격 높은 패션으로 영국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핫 아이콘이다. 값비싼 디자이너 의류 대신 대중적인 브랜드를 즐겨 입는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영국 디자이너의 옷을 즐겨 입어 패션으로 ‘정치’를 하는 왕세손빈과, 언니보다 더 뛰어난 패션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피파 미들턴의 차림새는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중계되며 ‘로열 시크’ 트렌드를 낳고 있다.
레이디 가가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자매의 패션 대결. ‘로열 시크’의 ‘종결자’는 누구일지 집중 분석했다.
슈퍼스타가 된 ‘들러리’ 피파
세계적으로 20억 명 이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진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는 ‘21세기 신데렐라’ 케이트 미들턴이 아니었다. 피파 미들턴은 청순한 상아색의 드레스로 늘씬한 몸매를 뽐내며 신부보다 아름다운 들러리로 주목을 받았다. 결혼식이 치러지는 동안 트위터에서 그녀의 이름은 언니 부부보다 훨씬 더 많이 언급됐다.
피파 미들턴의 인기는 ‘낯 뜨거운’ 소문마저 낳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말 형부 윌리엄 왕세손과 불륜 관계라는 추문에 휩싸였다. 언니 부부의 초대로 함께 공연 관람을 한 것을 두고 황색지들이 “윌리엄 왕세손이 처제와 시간을 보내길 원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쏟아낸 까닭이다. 일부에서는 윌리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성은 피파 미들턴이기 때문에 왕세손 부부의 결혼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막장’ 스토리도 떠돌고 있다.
그녀는 앞서 언니의 결혼식 직후에는 윌리엄 왕세손의 동생 해리 왕손과도 염문을 뿌렸다. 해리 왕손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이 피파 미들턴에게 푹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무렵에는 ‘해리포터’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한 안위크 성을 보유한 가문의 후손인 왕족 조지 퍼시와의 열애설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녀가 관심의 인물이 된 데는 패션 스타일이 큰 역할을 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사진 편집자 폴 실버는 한 인터뷰에서 “파파라치들이 피파 미들턴의 사진을 하루 평균 300∼400장씩 신문사에 보내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소 강해 보이는 광대뼈와 굵은 얼굴선으로 중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그녀는 슈트는 물론이고 캐주얼, 드레스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의상을 소화해내는 다재다능함으로 패션업계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고전적인 기준에선 언니보다 덜 예쁘지만 좀 더 현대적이고 지적으로 생겼다. 이 때문에 틀에 박힌 미인형 스타를 싫어하는 패션업계의 지지를 받는지도 모른다.
결혼식이나 파티에서는 풍만한 몸매가 잘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지만 평소에는 모던한 스타일의 정장과 재킷을 주로 입는다. 스파 브랜드 자라, H&M, 프렌치 커넥션 등에서 구입한 합리적인 중저가 아이템으로 멋을 낸다는 점도 그녀의 패션 따라잡기 열풍이 일고 있는 이유다. 패션잡지 ‘글래머’는 지난해 5월 ‘미들턴 자매의 패션 전쟁’이란 이름으로 공식, 비공식 석상에서 두 자매가 입은 패션을 집중 분석했다. 명도가 높은 ‘자라’의 파란색 블레이저 재킷과 흰색 팬츠, ‘타니아 로리’의 캐시미어 코튼 드레스, 1970년대 스타일의 랩스커트 등의 조합은 까다로운 패션 기자들마저 탄복하게 했다.
이 잡지는 7 대 5로 피파가 언니보다 더 스타일리시하다고 평가했다. “젊고 신선하고 스타일에 민감한 모습 덕분에 그를 잇 걸(It girl)로 명명한다”고 이 잡지는 치켜세웠다.
이러한 명성은 유행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국내 패션 추종자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그가 색깔별로 5개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모달루’백은 올 3월 19∼23일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열리는 ‘영국 무역&투자 전시회’에서 국내 최초로 선을 보인다. 이 브랜드를 수입하는 YKG코리아 측은 모달루의 토트백은 원래 이름이 ‘브리스틀’이었으나 피파가 즐겨 사용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아예 이름을 ‘피파’로 바꿨다고 전했다.
크고 각진 스타일의 샤넬 선글라스, 디자이너 지나 포스터의 모자, 토리버치 플랫슈즈, 로에베의 아마조나 멀티컬러백 등도 피파를 상징하는 패션 아이템이 됐다.
국제적인 ‘공작부인’ 효과
영국 언론은 이제 케이트의 패션을 논하며 ‘공작부인 효과’라는 말을 흔히 쓴다. 케임브리지 공작부인(The Duchess of Cambridge)이라는, 케이트의 결혼 후 공식 ‘직함’을 활용한 신조어다.
미국 텍사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랭귀지모니터는 이달 초 케이트가 2년 연속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인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지금껏 동일인이 2년 연속 1등을 차지한 적은 없었다. 최근 한 해 동안 인터넷과 7만5000개의 전 세계 인쇄매체, 온라인 미디어 등에서 패션과 관련한 이슈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을 꼽는 데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회자됐다는 뜻이다.
전위적인 패션으로 유명한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2010년과 2011년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으나 올해는 상위권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피파는 5위를 차지했다.
케이트가 한국에 오면 ‘완판녀’라는 별명이 붙을 것이다. 그가 입은 모든 옷이 날개 돋친 듯 팔렸기 때문이다. 결혼 발표 때 입은 푸른색 ‘이사’드레스는 다 팔린 것은 물론이고 수만 원짜리 ‘짝퉁’ 제품까지 양산되는 계기가 됐다. 그가 공식행사 때마다 입은 ‘리스’는 ‘공작부인 효과’로 매출이 2배나 늘었다.
케이트 효과를 보면 영국이 정말 극심한 내수경기 불황을 겪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올 1월 그가 버킹엄 궁전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내외를 만날 때 입은 175파운드(약 30만 원)짜리 누드톤 드레스와, 유명 포토그래퍼 마리오 테스티노가 찍은 공식 약혼식 사진 속에서 입고 있는 159파운드(약 28만 원) 상당의 크림 실크 드레스는 1분에 한 벌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영민한 그는 영국 브랜드를 애용하는 모습으로 영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가 결혼 발표 때 입은 ‘이사’ 드레스는 브라질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다니엘라 이사 헬라엘의 작품이다. 이브닝드레스로는 역시 영국 브랜드인 ‘버버리’ 제품을 즐겨 입고 가방도 ‘멀버리’를 선호한다.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서 ‘알렉산더 매퀸’을 입었을 때 가장 빛나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혼식 때 입었던 우아한 V넥 라인 웨딩드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말 결혼 후 처음으로 영국 왕실의 성탄절 행사 때 입은 버건디 컬러 코트도 우아했다.
‘위크엔드3.0’이 꼽은 케이트 최고의 옷은 지난해 6월,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들을 위한 메달 수여식에서 입었던 ‘알렉산더 매퀸’의 더블브레스트 코트다. 푸른색과 유난히 잘 어울리는 그의 무릎길이 코트는 같은 색 하이힐, 결혼반지와 잘 조화를 이뤘다. 그가 공식석상에서 입은 ‘매퀸표’ 옷들은 대개 맞춤 제작된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자매 간 패션 전쟁에서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아직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 긴 승부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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