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2월 프랑스 아를 시민들은 시장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쫓아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아를이 고흐의 발자취를 찾는 관광객들로 들끓게 될 줄.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인 ‘카페 라 뉘’(밤의 카페)는 오늘날 일종의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카페의 노란색 벽돌과 햇빛 가리개용 천막에 “그림과 똑같다”며 감탄하다가도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별 가득한 군청색 하늘이 없음에 아쉬워할 수도 있다.
미술 작품을 보면 그림 속에 담긴 장소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작가이자 미술사가인 저자 역시 비슷했다. ‘화가는 우리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데 정말 그럴까’라는 궁금증을 가득 안고서, 22명의 화가가 그린 22점의 풍경화 속 실제 장소를 찾아갔다. 이탈리아부터 오스트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독일 등 유럽 방방곡곡을 여행하면서 작품 속 장소들을 사진으로 담아 왔다.
화가가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있는 반면 그림 속 풍경이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화가의 눈’의 진짜 매력은 다른 데 숨어 있다”고 강조했다. 작품 속 장소에 가면 그 화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또는 한 장소가 작가의 개성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표현됐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르주 브라크(1882∼1963)는 라로슈 귀용 성을 삼각형 지붕과 원기둥 탑, 케이크 조각 모양으로 단순화해 그렸다. 클로드 모네(1840∼1926) 역시 특유의 빛의 변화에 따른 인상주의 기법으로 루앙 대성당을 그렸다.
명화와 실경 사진을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심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 인간과 예술과 자연을 느끼고 싶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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