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력의 재발견/로이 F 바우마이스터, 존 티어니 지음/이덕임 옮김·384쪽·1만8000원·에코리브르
서구 사회에서 한국이나 중국, 일본인은 유럽계 백인보다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과연 그럴까. 심리학자이자 IQ 연구자인 제임스 플린 뉴질랜드 오타고대 교수는 “동아시아 출신 미국인의 IQ 점수는 유럽계 미국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약간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아시아인의 지적 능력 활용도가 백인보다 훨씬 높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백인 미국인은 평균 IQ 110 이상이어야 의사나 과학자, 회계사 같은 전문직종을 할 수 있었지만 중국계 미국인은 IQ 103으로도 가능했다. 플린 교수는 그 차이를 자기 절제력, 즉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하며 꾸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설명했다. 즉 아시아인의 자기 절제력이 백인보다 뛰어나다는 것.
저자인 로이 F 바우마이스터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 교수가 강조한 의지력(willpower)은 쉽게 말해 자기 절제력을 뜻한다. 그는 생각과 감정, 충동, 수행을 조절하는 능력인 의지력을 인간 행동을 결정짓는 숨겨진 ‘배후’라고 지목했다.
19세기 등장한 개념인 의지력은 20세기 들어선 심리학자와 철학자의 냉대를 받아야 했다. 이보다는 자존감이 더 중시됐다. 하지만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다양한 실험 결과를 분석한 뒤 “인간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 살려면 자존감보다는 의지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지력은 마치 근육처럼 일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가 고갈되고 다시 충전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질이 배제된 정신만의 산물은 아니다. 의지력의 동력이 바로 포도당이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출근한 후 오전 내내 대충 일하다가 점심 식사 후(즉 포도당이 채워지면) 일의 능률이 높아지는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통계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미 컬럼비아대 조너선 레바브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1000여 건의 가석방 심리를 분석한 결과 의지력 정도가 판사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혀냈다. 판사들은 평균적으로 죄수 2명 가운데 1명꼴로 가석방을 허용했다. 그런데 점심 식사 전인 오후 12시 30분에 가석방이 통과된 비율은 20%에 그쳤지만 점심 식사 직후엔 60%로 치솟았고 오후 늦게 다시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식후엔 의지력이 높아지면서 가석방 심리에 적극적으로 임했지만, 공복이 되면 의지력이 낮아지면서 어려운 판단을 회피하고 죄수를 감옥에 두는 ‘안전한’ 선택을 내린다는 설명이다.
의지력은 강화될 수 있을까. 저자는 “매일 곧은 자세를 연습하거나 영양 식단으로 식사할 경우 의지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구부정한 자세를 없애려고 노력한 학생일수록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향상됐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체력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때 유행했던 ‘감정 조절’ 훈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실 의지력은 우리와 같은 아시아인에게 낯선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의지력이 고갈되는 상황을 피하도록 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직장인이라면 우선 아침 식사 습관을 들여볼 만하다.
다양한 실험 및 사례가 소개돼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 다만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없이 빼곡히 채워진 글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턱 막히게 한다. 이 책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조금 더 아슬아슬한 레이디 가가’로 불린다는 영국 여가수 어맨다 파머의 사진이라도 넣었더라면, 또는 수많은 실험과 관련된 이미지나 그래프를 삽입했다면 책이 훨씬 흥미진진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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