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빚어내는 소리는 그대로 한 폭의 두루마기 그림이 되었다. 그들의 모국인 네덜란드 화가들이 창조하였던 여러 유형의 풍경화가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호베마, 페르메이르, 고흐 등이 남긴 명화 같은 소리.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로열콘세르트허바우(RCO)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실로 아름다웠다.
음악 연주를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순위를 매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렇지만 RCO의 사운드는 여전히 특별했다. 강철 갑주와 중후한 풍채로 무장한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빈 필하모닉과 전혀 달랐다. 벨벳처럼 입자감 고운 현과 목관, 금관이 화사한 음색의 고순도 하모니를 직조하여 회장 안을 따스한 공기로 휘감았다. 기막힌 테크닉을 소유한 모든 파트의 주자들이 균형과 조화라는 덕목에 충직한지라 오케스트라는 세부적으로 극도로 정교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유기체 앙상블로 물결쳤다. 지휘자 정명훈의 존재감도 빛났다. 전진과 정체, 밝음과 어두움을 능수능란하게 조정하는 그의 유연한 바통은 첫 번째 곡 ‘갈란타의 춤’에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약동미를 불어넣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차례에 등장한 야니너 얀센의 연주는 예상보다 온건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나타내기보다는 곡 자체의 훌륭함을 재인식시키는 타입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고음이 밝고 달콤하긴 하되 영상에서 보여주었던 강력한 흡입력은 부족했다. ‘현을 진동시켜 소리 내는 것이 복잡하므로 바이올린은 성악에 가깝다’고 말한 이츠하크 펄먼의 주장에 따른다면 얌전한 리릭 소프라노라 할까. 그녀를 편안한 품으로 감싸주는 오케스트라의 전아한 반주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사라방드’는 청초했다.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이날 콘서트의 하이라이트였다. 정명훈은 절도와 자유를 겸비한 RCO의 기능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기품 있고 순음악적인 버르토크를 추구했다. 베이뉨, 하이팅크, 샤이 등과 같은 과거의 역대 수석 지휘자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적절한 선에서 각 악기의 자발성을 허락해 이 작품이 대편성 관현악곡인 동시에 무수한 독주부로 구성된 협주곡임을 증명했다. 일반적인 현과 관 섹션은 물론이고 피콜로와 하프, 작은북을 연주하는 단원마저 어엿한 솔리스트로 경쟁하듯 활약하는 장관이 입체감 넘치게 펼쳐졌다. 1악장의 엄숙한 고딕풍 곡상, 2악장의 익살스러운 릴레이, 3악장의 을씨년스러운 저녁놀 분위기가 상호 대칭적으로 연출됐다. 코믹한 4악장을 거쳐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리드미컬하게 소용돌이치는 5악장이 청중의 혈맥을 한껏 자극했다. 종연 후 관객이 보내는 열렬한 환호에 답해 정명훈은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했다. 이 호쾌하고 드라마틱한 베르디에 흥분하지 않을 자 누구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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