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지 말고 흔들어봐, 세상을 막 흔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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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8일 03시 00분


■ 무용극 ‘사심 없는 땐쓰’ ★★★☆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제공
1990년대 초 휴전선 철책 근처에서 군생활을 할 때, 진저리날 만큼 힘든 이등병 시절 초코파이 한 박스보다 더 간절히 욕망한 것은 춤이었다. 당시 춤은 말하자면 조직의 엄격한 규율에 꽁꽁 묶여 심리적으로 억압된 데 대한 반작용 같은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학교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군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지켜야 할 규칙과 의무는 많고 자유는 적다. ‘마음껏’이라는 단어는 학업을 마친 ‘어른’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왜 그때는 바보같이 믿었을까.

현대무용가 안은미 씨가 기획해 24∼26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 ‘사심 없는 땐쓰’는 일종의 춤 프로젝트다. 학교라는 울타리와 수많은 규칙과 타인의 시선과 비교와 경쟁의 잣대에 옴짝달싹 못하는 십대에게 춤을 돌려주자는.

지난해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서 할머니들의 길거리 막춤을 무대 예술로 이끌며 ‘어르신’의 몸의 역사를 훑었던 안 씨는 그 후속 프로젝트에서 십대 청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일상의 대부분일 서울국제고 학생 79명이 참여해 공연 준비를 겸한 6개월의 워크숍을 거쳤고 이 중 22명이 안은미무용단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지난 6개월 동안 이들은 안 씨의 지도에 따라 자신만의 춤을 찾아갔다.

교복에 하이힐 차림을 한 안은미 씨의 독특한 독무로 시작해 힙합 댄스부터 아이돌 그룹의 춤과 아이들의 막춤을 모티브로 강렬한 춤을 선보인 전문 무용수 9명의 춤사위는 서막에 불과했다.

교실 복도에서, 남자 화장실 안에서, 교문 앞에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눈썰매장에서 캠코더에 담은 십대 아이들의 즉석 춤이 영상 화면으로 상영될 때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20여 분간 상영이 끝나자 이번엔 공연의 주인공인 서울 국제고 학생들이 무대에 나섰다. 22명이 차례로 등장하며 “너의 마음을 계산하지 마. 그냥 흘려” “가장 하고 싶은 건 실컷 잠자는 것” 같은 발언과 함께 빠르게 편곡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이들은 공연 마지막에 관객까지 무대로 끌어들여 신나는 춤판을 벌였다.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구르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사실은 다 춤이다. 그렇게 느낌대로, 몸 가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응어리도 풀린다. 춤의 치유 효과다. 학생들은 6개월간 분명 이전과 달라졌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발랄했고 자신감 넘쳐 보였다. 이들의 변화 과정을 공연을 통해 좀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면 더 감동적인 공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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