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동화같은 장애인 부부 얘기… 다큐 ‘달팽이의 별’ 내달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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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9일 03시 00분


2년간 가슴 찡한 일상 담아

어디서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남편과 아내는 “세상을 떠날 때도 동시에 가야 한다”고 서로 다짐했다. 조아 제공
어디서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남편과 아내는 “세상을 떠날 때도 동시에 가야 한다”고 서로 다짐했다. 조아 제공
“영화를 보기 전에 많이 긴장했어요. 우리 삶을 아름답게 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김순호 씨·49) “(영화를 계기로) 시청각장애인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조영찬 씨·41)

28일 오후 서울의 한 극장.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을 큰 스크린에 비춘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을 감상한 부부는 감격에 찬 표정이었다.

남편 조 씨는 ‘꿈속에서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는 시청각장애인이다. 어릴 적 척추를 다친 김 씨는 키가 남편의 허리를 조금 넘는 지체장애 3급이다. 영화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남편에게 아내는 87분 상영시간 내내 점화(點話·점자를 손등에 찍어 대화하는 방식)로 영화 내용을 설명해줬다.

영화는 부부가 밥 먹고, 산책하고, 공부하는 일상을 2년간 함께하며 담아낸다. 형광등을 갈아 끼우기 위해 남편은 부인의 사다리가 되고, 아내는 남편의 눈과 귀가 된다. 아내는 식탁 위 반찬의 위치를 살가운 점화로 일러주고, 남편은 싱크대가 높기만 한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대신 한다.

신학대에 다니는 남편을 다른 사람 손에 등교시킨 아내가 안절부절못하는 장면에서는 관객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조 씨의 시적인 내레이션은 관객의 귀를 맑게 한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은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엄지 공주’와 ‘눈 먼 시인’의 사랑 이야기는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지난해 1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이 영화제에서 아시아 최초의 수상이다. 외신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순간과 유머로 가득 찬 영화다” “조용하지만 사랑스럽고 강렬하다”고 극찬했다.

▶본보 2011년 11월 28일자 A31면 ‘달팽이의 별’ 암스테르담 다큐영화제 대상

이 영화를 연출한 이승준 감독은 “제목은 ‘시청각장애인은 달팽이 같다’는 조 씨의 글에서 따왔다. 장애인 소재 영화는 무겁다는 편견을 깨고 어른의 동화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다음 달 22일 국내 최초로 일반 상영방식과 함께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애인을 위해 음성해설과 자막을 넣는 방식) 버전으로 개봉한다. ‘산울림’의 가수 김창완이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음성해설을 맡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천천히 봄을 달굴 기세다. 달팽이처럼….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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