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치러지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3선이 유력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60)를 조명한 책이 미국 서점가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여성 저널리스트로 러시아에서 14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양국 시민권을 가진 마샤 게센의 ‘얼굴 없는 남자(The Man without Face)’다. 미국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의 러시아 특파원인 그는 다른 책에선 볼 수 없을 정도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푸틴을 조명했다.
저자는 성형수술을 통해 그러잖아도 족제비 같은 인상이 더욱 교활하게 보이는 푸틴이 걸음걸이뿐만 아니라 미소마저도 위협감을 준다고 묘사한다. 책에 따르면 1999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집권하자마자 푸틴은 언론 탄압, 정적 숙청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해체하며 스스로 ‘거리의 폭력배(Street thug)’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그의 권력욕과 보복심리에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푸틴은 헐벗고 굶주렸던 전후 레닌그라드에서 25세까지 부모와 한방에서 자면서 폭력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를 잔인하고 후회를 모르는 냉혈한으로 만든 결정적 동인(動因)은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였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데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너서클’의 낙점을 받았던 그는 KGB식 정치 공작으로 집권을 완성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1999년 러시아 연쇄 아파트 폭파 사건은 정부의 발표처럼 체첸 공화국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개입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은 체첸 공화국과의 2차 전쟁을 촉발시켰고 결과적으로 푸틴의 첫 집권에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
2002년 체첸 독립을 주장하는 테러리스트 42명이 모스크바 극장에 난입해 129명이 사망한 사건과 2004년 북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 학교의 인질극으로 300여 명이 사망한 사건도 모두 푸틴의 작품이라고 저자는 본다. 그렇게까지 강경 진압할 필요가 없었던 두 테러 사건에서 푸틴은 무자비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것.
또 풍부한 러시아의 석유 광석 등 천연자원을 수출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기업인들에게 나눠주면서 경제를 장악해 갔으며 이 과정에서 라이선스 비용의 30%가 넘는 커미션을 챙겼다고 책은 주장한다. 국유재산을 사실상 자신의 재산처럼 활용했다는 비판이다.
이 책의 내용들이 진실인지 여부는 논란거리다. 하지만 상당 부분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가장 단순하고도 명백한 진실은 푸틴의 러시아가 정적과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종종 죽이기까지 하는 나라라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최근 러시아에서 일고 있는 반(反)푸틴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저자는 이번 시위가 과거 시위와는 분명히 차별성이 있다고 에필로그에서 말한다. 또 이런 민주화 바람 때문에 그동안 ‘보이지 않는 얼굴’로 러시아를 지배했던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행보를 이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