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오는 날 예루살렘 테라 상타 대학의 일층과 이층 사이 계단참에서.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
-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 사랑을 해보면 숱한 유행가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이별을 해보면 영화나 드라마의 이별 장면 하나도 허투루 만들어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막상 결혼을 앞두고 보니, 개연성 없다고 비아냥거리던 일일연속극의 결혼 에피소드들조차,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게 하나도 없다. 새삼 걸음마 떼듯, 인생을 다시 배우는 느낌. 덕분에 지금껏 봤던 영화 드라마 소설 속 모든 결혼식들이 수시로 떠올랐다 사라지곤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각별한 것이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이다. 운명적인 만남이나 이별의 순간도, 눈물 자아내는 구구절절한 사연도 없지만 이 소설은 내가 아는 가장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차고 눅눅한 겨울공기, 천장이 높아 울림이 많은 회색빛 대학 건물. 강의 교재를 끼고 양방향으로 오가는 수많은 학생들. 구둣발소리, 소란스러운 웃음들. 그 계단참 어디에서 발을 헛딛게 된 여자와 그녀를 우연히 부축해준 남자.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시작과 결과 사이에 얼마나 많은 비약이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로맨스는 그런 비약을 가능하게 한다. 남자는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할 겸 카페테리아에 들르자고 제안하고, 여자는 따른다. 이제 결과는 뻔하다. 제인 오스틴이 말했던 것처럼 ‘로맨스는 부자연스러운 시작의 자연스러운 결과물’(Romance is the natural sequel of an unnatural beginning)이다. 지질학도인 미카엘과 히브리문학도인 한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들은 젊었고, 그 이유만으로 모든 게 충분했다.
하지만 가슴을 전율시키는 오즈의 섬세하고 시적인 문장들이 빛나던 첫 만남 이후 계속해서 그려내는 것은 달콤하고 환상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어떤 종류의 아픔, 서러움, 먹먹함 따위다. 청혼, 어른들께 인사드리러 가는 길, 그을린 등유램프 불빛 아래서 자신을 소개하는 미카엘의 헌신적인 아버지, 수다스러운 고모들, 울음을 터뜨리고 만 한나의 어머니. 시끌벅적한 피로연장과 노랫소리, 춤추는 사람들. 이 일련의 장면들이 눈앞에서 보듯 생생한 동시에 꿈결처럼 뿌옇게 흐리고, 아름다운 동시에 더없이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시간 때문이다.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그들이 처음 만난 시점으로부터 멀어지는 긴 과정(어쩌면 인생 그 자체)이다. 그들은 그때의 서로에게서도, 그때의 사람들에게서도 계속 멀어진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죽고, 사라지거나 떠난다. 변화와 이질감, 혼란이 뒤따른다. 세월, 죽음, 상실이 그들을 포위해 오는 동안,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에 관한 기억만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쩌면 이것은 화려하지도 눈부시지도 않은, 혼란과 그리움, 상실의 긴 기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병처럼 들뜬 어떤 극적인 사랑이야기보다, 이 우울하고 서정적인 소설은 훨씬 애틋하고 눈물겹다. 그것은 (물론 오즈의 찬탄할 만큼 감각적인 문장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이 기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치 믹서에 넣고 돌린 것처럼 삽시간에 달라질, 어지럽고도 낯선 삶을 향한 첫 출발. 하지만 사랑이 정말 위대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함께 감내해내겠다는 겸허함 때문은 아닐는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함께 지나온 만큼 우리의 등을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 이 많은 기억에 의지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나의 미카엘…. 층계참에서 미끄러지던 순간 내 팔을 단단히 붙들던 당신의 손, 그토록 젊고 어리던 우리와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 지금의 이 순간까지, 나는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
appena@naver.com 톨이 Humor, Fantasy, Humanism을 모토로 사는 낭만주의자. 서사적인 동시에 서정적 부류. 불안정한 모험과 지루한 안정감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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